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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과 기대효과의 불편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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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과 기대효과의 불편한 동거
  • 김 완
  • 승인 2020.06.0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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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의 한장칼럼(1)

몇 년 전, 공문서를 작성하면서 강한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공문서 본문 첫 문장의 첫 글자를 그 윗줄에 있는 제목의 첫 글자에 맞추어 써야 한다는 예시에서였다. 당시 행정안전부에서 발행한 행정업무편람에서 제시한 작성의 예였다.

예시대로 공문서를 작성하려면 전국의 수백만 공문서 작성자는 첫 문장을 쓰기 위하여 불필요하게 여덟 번의 스페이스 바를 눌러야 한다. 그리고 그 하위 문장을 작성할 때는 열 번의 스페이스를, 그 다음은 열두 번을 눌러야 했다.

그 예시대로 작성하다 보면 공문서의 왼편은 빈 공간이 휑하고 오른 편은 글씨가 빽빽하게 채워지다가 다음 페이지로 이동하는 것이 예사였다. 공문서 작성에 관한 규정을 두고, 편람을 발행하는 목적은 행정업무의 편리성과 공문서의 가독성을 높이는데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공문서의 첫 문장 첫 글자 쓰기 예시는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더욱이 그렇게 작성해야 하는 어문 규정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필자는 이의 불합리성을 여러 공적인 자리에서 언급했고 관계 기관에 시정을 요구하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2018년도 말경에 이를 바로잡는다는 공문서가 일선 현장에 안내됐다.(필자의 요구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처럼 공문서를 작성하다 보면 불합리한 부분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하나의 기획안에 불편하게 동거하고 있는 용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하는 것이 기획안을 작성하는 일이다. 현장에서 많이 사용되는 기획안은 일정한 형태의 목차 구조를 갖는다.

대부분 기획서의 목차는 목적-방침-세부계획-추진일정-예산계획-평가-기대효과’의 형태를 취한다. 이 체제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용어가 ‘목적’과 ‘기대효과’이다. ‘목적’의 사전적 의미는 ‘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방향’이다. ‘기대 효과’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목적을 지닌 행위에 의해 드러나기를 바라는 결과’다.

굳이 사전에 기술된 의미를 나열하지 않더라도 두 용어는 ‘그 업무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바’라는 공통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기획안에서 ‘목적’과 ‘기대효과’를 함께 기술할 때 그 내용이 같으면 중복이고, 다르면 모순이 된다.

어떤 기획안의 ‘목적’이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광주에서 서울을 갈 수 있도록 한다’라고 하면 ‘기대효과’에는 뭐라고 써야 할까? 어떤 정책을 기획하는데 있어서 ‘목적’과 ‘기대효과’를 함께 기술하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

[함평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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