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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갓집 처녀와의 파혼' 키르케고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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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갓집 처녀와의 파혼' 키르케고르(1)
  • 강성률
  • 승인 2021.09.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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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교수의 철학이야기(45)

키르케고르는 스물네 살 때에 자기보다 열 살이나 아래인 어린 소녀 올센을 보고 첫눈에 반해 그녀와 결혼할 것을 결심한다. 원래 그녀는 자신의 가정교사이자 키르케고르의 친구인 슐레겔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는 불문곡직하고 그녀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고, 마침내 그녀의 마음을 끄는 데 성공해 결혼 승낙까지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키르케고르는 ‘그녀와 결혼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약혼녀 쪽에서 파혼해오기를 바랬다. 그는 최대한 혐오스럽게 처신하려 했고, 나중에는 비정한 말까지 던지고야 만다.

“내가 당신과 결혼할지라도 십 년 후에는 다시 젊어지기 위해 젊은 여자를 찾게 될 거야”

이 말에 올센의 심장은 찢어질 것 같았고 그 역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일이 그렇게 되자 코펜하겐의 시민들은 양갓집 처녀를 농락한 패륜행위라고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생겼다. 결별을 선언한 이후로도 키르케고르는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 나갔던 것이다.

몇 시에 어느 교회에서 보았는지, 그녀가 서 있었는지 앉아 있었는지, 또는 그녀가 웃었는지 웃지 않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올센이 다름 아닌 슐레겔과 결혼하여 함께 서인도로 떠났다는 사실이 신문에 보도됐다. 남편인 슐레겔이 그 곳의 장관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막상 일이 그렇게 되자 키르케고르는 몸을 부르르 떨며 올센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키르케고르가 올센과 파혼을 결심한 이유가 뭘까? 그가 어렸을 적 나무에서 떨어져 성적 불구자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그가 사창가에 한 번 간 일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물론 그곳에 있는 여자와 은밀한 관계를 맺기는커녕 조롱만 사고 돌아왔을 뿐인데도 말이다. 보통사람들에게는 별 문제 거리도 못되는 이 과오를 그토록 진지하게 받아들인 까닭은 성장기 때의 불우한 가정환경 탓이 아닐까 짐작된다.

키르케고르의 어머니 안네는 원래 그 집의 하녀였다. 아버지는 전 부인이 슬하에 자식 하나 없이 세상을 떠나자 안네를 강간해 임신시켰고, 이듬해에는 당시 교회의 교리에 금지된 재혼을 감행했다. 그리고 결혼식 후 다섯 달 만에 안네는 장남을 낳고 말았다. 원래 양심적이고 종교적이었던 그 아버지는 이 사실을 두고 무척 괴로워했다.

이러한 와중에 키르케고르는 두 사람 사이에 막내로 태어났는데, 마침 그가 출생한 연도는 덴마크에 새로운 지폐가 발행됐던 해다.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재산을 잃는가 하면 몇몇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도 한 해였다. 키르케고르는 자기 자신의 신세를 그 지폐와 같이 생각했다. 스스로를 혼란의 존재로 인식했던 것이다.

스물 두 살 되던 해의 가을, 키르케고르는 아버지가 하나님께 지은 두 가지 죄를 알게 된 다. 그의 아버지 미카엘은 불우한 소년 시절에 양을 치다가 유틀란트 황야에 있는 언덕에 올라가 심한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을 저주했다. 또 하나의 죄는 앞에서 말했듯이, 어머니와 정식결혼도 하지 않은 채 임신을 시켰다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키르케고르는 집안에 닥친 모든 불행, 말하자면 그의 아버지가 두 아내와 다섯 자녀를 잃게 된 것은 모두 죄에 대한 댓가라고 생각했다.

또한 지금 살아있는 형이나 자신 역시 몸이 약해져서 머지않아 죽게 될 것으로 믿었다. 자기의 죽음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신념은 너무 확고해 길어야 서른 세 살의 생일을 넘기지 못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서른세 살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살다간 나이임) 때문에 무사히 그 날을 넘기자 혹시 생일이 잘못 기록된 것이 아닌가 해 교회에 있는 호적을 조사해보러 갈 정도였던 것이다.

[광주교대 명예교수·철학박사·소설가] (키르케고르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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