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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쉽지만 한국어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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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쉽지만 한국어는 어렵다"
  • 김승호
  • 승인 2020.07.0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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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세한대 초빙교수·전 함평교육장

교육학을 공부하는 필자로서는 학교현장과 교육행정의 살아있는 소식들이 필요해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자주 접한다. 현장 교직원들의 지식교육과 인성지도에 대한 생생한 소식들을 접하면서 교육현장의 힘든 상황들을 실감하고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 강의로 촉발된 도농간 교육여건 격차, 부모의 학습지원 여부에 따른 학력격차 문제를 보면서 우리 지역 학생들의 안타까운 현실에 걱정이 일기도 한다.

최근 경인지역의 어느 여고 교장선생님의 글을 통해 지식교육 위기 현상을 접할 수 있었다. 학교 선생님께서 안경을 바꾸어 쓴 학생에게 ‘너 참 이지적인 아이구나“라고 했단다. 그 말을 들었던 여학생은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당황했고, 옆에서 함께 들었던 다른 학생들도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얼마 후 선생님은 그 여학생으로부터 불만을 듣고서야 여러 학생들이 당황했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선생님, 저를 너무 경솔하고 쉬운 아이로 보셔서 상처받았어요”라고 하더란다. 이같은 황당한 사례와 관련 교장선생님은 자신의 경험을 적었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생활기록부 종합란에 ‘이지적’이라는 단어를 쓰셨는데 처음엔 정확한 뜻을 몰라 국어사전을 찾아 보았다고 했다. 국어사전에서 의미를 확인한 후 그는 이지적인 사람이 돼야 한다는 당위성을 갖게 됐고, 자기 정체성으로 발전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요즘 학생들의 어휘력 저하가 큰 문제라고 다들 인식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그리고 “교육정책 담당자들이 제발 엉뚱한 데에 삽질하지 말고,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의 기초·기본지식 확보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국어사전에는 '이지(理智) : 이성과 지혜를 아울러 이르는 말. 또는 본능이나 감정에 지배되지 않고 지식과 윤리에 따라 사물을 분별하고 깨닫는 능력', '이지적 : 용모나 언행에서 이지가 풍기는. 또는 그런 것'으로 나와 있다. 다른 사전에서는 '이지(理智) : 이치 리, 슬기 지(reasoning power, intelligence)본능이나 감정에 지배되지 않는 이성(理性)과 지혜(智惠)'로 나와 있다.

이러한 속뜻을 아는 학생이었다면 자기를 칭찬해 주신 선생님께 크게 고마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의 경험과 같이 외모에서 풍기는 이지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는 내면의 이지력을 키우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이지적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당황했던 여고생은 아마 지식의 보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 의미를 확인해 보았을 것이다. 최소한 두서너 사이트에서 의미를 확인한 후 선생님께 정색을 하면서 불만을 터뜨렸을 것이다. 필자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이지적’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요즘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사이트에는 ‘이지적인 사람?’에 1만회 이상, ‘이지적이다의 뜻이 뭐죠?’라는 질문에 13만회 이상 조회한 것으로 나와 있다. 중학생 정도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기본적인 용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공개적인 답변은 어떤가? 앞에 제시한 국어사전의 풀이보다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가요?’, ‘똑똑하게 생겼다는 것? 이국적으로 생겼다는 뜻? 쉽게 말하면, 똑똑하고 고지식한, 그런 말이죠’라는 답변에 공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교장 선생님의 글을 읽었던 순간 필자가 생각했던 답변도 나왔다. ‘easy 쉬운 사람 아닌가요?’라는 해석이다.

선생님의 칭찬을 반대 의미로 오해했던 그 여학생은 그럴듯한 답변들을 확인했고, 결국 틀리게 이해한 것이라 여겨진다. 한글은 쉽게 배울 수 있다. 하루 이틀만에 자음과 모음 24개만 외운다면 모든 한글로 된 책을 다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외교관 양성 과정에서 한국어는 아랍어와 중국어와 함께 가장 어려운 언어라고 한다.

한글은 가장 쉬운 글자지만, 한국어는 가장 어려운 언어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국어사전 교육을 종전 4학년 10시간에서 3학년 10시간을 추가하여 두배로 늘려 국어이해와 국어사전 활용교육을 대폭 강화했다.

논리적 비약으로 들리겠지만 초등학교 시기부터 단 몇자라도 동서남북과 같은 기본적인 한자를 익힐 수 있도록 하고, 한자가 제시된 국어사전을 항상 보면서 우리말 실력을 탄탄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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