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3)
상태바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3)
  • 강성률
  • 승인 2020.04.04 13: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성률 교수의 철학 이야기(6)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서른 명으로 구성된 과두체제를 세워 공포정치를 실시했다. 소크라테스는 이 위원회에 끌려가서 교육을 그만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는데, 과두체제의 지도자 가운데 그의 제자와 플라톤의 큰아버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두정치가 무너지고 다시 민주제로 바뀌자 소크라테스의 정치적인 기반은 상실되고 말았다. 또한 당시 아테네를 지배하던 야심가들에게 진리와 도덕을 강조하는 소크라테스는 매우 위험한 인물로 비쳐졌다.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첫째, 청년을 부패시켰고 둘째, 나라에서 인정하는 신을 섬기지 않고 다른 신을 믿는다’는 애매한 이유로 고소했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은 500명의 배심원들이 판결하는 법정에서 진행됐다. 원고 쪽의 고소 이유서가 낭독된 직후, 소크라테스는 직접 자기 자신을 변호했다. 그러나 그 장면은 마치 피고를 향해 나무라는 검사의 모습과 흡사했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유죄냐 무죄냐에 대해 280대 220이라는 작은 차이로 유죄가 선고됐다.

이어서 형량에 대한 투표가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360대 140이라는 커다란 표차로 사형을 선고받고야 말았다. 소크라테스의 계속된 제청이 그를 무죄로 판결한 배심원들의 비위까지 건드렸기 때문이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24시간 안에 처형을 받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마침 델로스 섬에 있는 아폴로 신에게 감사의 제물을 바치러 떠난 배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에 대한 사형 집행은 연기됐다.

마침내 배가 들어오는 날 아침 일찍, 그의 아내와 친구, 제자들이 감옥에 모였다. 어렸을 때부터 죽마고우였던 크리톤은 “돈은 얼마가 들던지 관리들을 매수할 테니 탈출하게나”라고 권유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이제까지 나는 아테네 시민으로서 아테네 법이 시민에게 주는 특권과 자유를 누려왔네. 그런데 그 법이 이제 내게 불리해졌다고 그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비겁하지 않은가?”하며 단호히 거절했다.

이 대목이 오늘날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 라고 말했다는 부분이다. 그 날 해질 무렵, 간수들이 독배를 가지고 감옥 안으로 들어왔다. 사형집행 시간은 해 지는 시간으로 정해져 있었으나 대개는 일몰(日沒) 후에도 음식을 원대로 먹고 마셨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조용하고 침착하게 독이 든 약을 다 마셔버렸다.

감옥안은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소크라테스는 감옥안을 거닐다가 다리가 무겁다고 하면서 반듯이 드러누웠다. 간수는 발을 꼭 누르면서 “감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대답하자 다리를 눌러보면서 몸이 식어가고 있다고 했다. 하반신이 거의 다 식었을 때, 소크라테스는 얼굴에 가렸던 천을 제치고 “참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주게”하고 말했다.

“잘 알았네, 그밖에 다른 할 말은 없는가?”라고 묻자 이 물음에는 아무 대답이 없다고 했다. 여기서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약(醫藥)의 신 이름인데 당시에는 누구든지 병에 걸렸다가 나으면 감사의 뜻으로 닭 한 마리를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평소에는 법의 혜택을 맘껏 누리며 ‘법대로’를 외치다가 자기에게 불리해졌을 경우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대드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법은 계속 있었던 것이다. 물론 좋지 않은 법은 고쳐야 한다. 그러나 고쳐지기 전까지는 설령 그것이 나에게 손해가 될지언정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것이 세계 4대 성인의 한 사람으로 건전한 아테네 시민으로서 위대한 생을 살다 간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이다.

[광주교대 교수·철학박사·소설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