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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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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야, 미안해
  • 김재흥
  • 승인 2020.03.1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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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흥∥신안교육장

트로트야 그동안 정말 미안해, 우리 정서에 딱 맞는 트로트를 그동안 뽕짝이란 이유로 냉대하고 무시해서 말이야. 그런데 최근 몇 개월간 모 방송사에서 진행해 온 ‘내일은 미스터 트롯’ 프로그램을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어.

아마도 우리 핏속에 내재된 그 감성과 흥(興)을 담은 가장 정확한 통로가 바로 트로트 너이니까 말이야. 작년에 송가인으로 시작된 트로트 열풍이 점차 드세어가고 있는 판에 남성들의 트로트 경연이 어젯밤 새벽까지 이어졌으나 끝을 맺지 못했어. 시청자들을 감성의 도가니에 넣었다가 눈물을 찔끔거리게 한 최근의 히트 프로그램으로 손색이 없었어.

트로트야, 난 사실 결승에 진출한 7명 중 누가 1등을 해도 다들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 각자의 독특한 목청 색깔이 있고 나름대로 창의적 발성을 조금씩 다르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문제는 선곡에 따라 각자의 분위기와 현장의 감성 깊이에 의해 부여되는 점수가 달라진다는 점이지.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임영웅은 선곡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해, ‘배신자’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가사가 주는 부정적 느낌이야. 효심에서 발동한 아버지를 추억하는 노래로써 가사 분위기도 그렇고 결승에서 부를만한 노래는 아니라는 거야.

‘보랏빛 엽서’가 주었던 강렬한 감성을 능가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두고두고 서운함으로 작용할 것이야. 전국의 아줌마 부대를 주름잡았던 보랏빛 엽서에 비해 작곡가 미션곡인 ‘두 주먹’에서 애간장을 녹였던 보랏빛 감성의 실종은 마스터 군단의 마음을 독차지하지 못했어.

거기에 반해 탄탄한 무대 매너를 자랑하는 꺾기의 귀재 이찬원은 감칠 맛 나는 노래로 흥을 돋구는 최고의 가수였지. 또한 트로트가 왜 우리 정서를 담고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기에 충분했어. 그가 부른 ‘딱풀’과 ‘18세 순이’는 귓가에 아직도 맴돌고 있으니 원곡 가수들이 가져왔던 그 느낌 이상의 새로운 멋스러움을 느끼기에 충분했지.

‘막걸리 한잔’으로 예선부터 우승 후보와 치열한 접전을 펼친 영탁은 결승에서도 유감없이 제 실력을 선보였어. ‘찐이야’를 불러 트로트 가수로서의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였지. 아마도 ‘찐이야’는 영탁의 달달한 막걸리 목청의 유명세를 타며 새로운 유행가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그러나 ‘내 삶의 이유 있음은’ 원로 가수 이미자의 강력한 인생 역사가 느껴지는 노래이기에 아직 젊디젊은 영탁이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었어. 가사의 내용도 무게감이 느껴지고 이미자의 혼이 깃든 노래이기에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노래가 아니야. 그럼에도 영탁 특유의 가창력이 원곡의 이미지를 제법 살려냈다고 볼 수는 있었어.

이번 경연에서 정동원은 처음부터 약방의 감초같은, 혹은 양념같은 분위기를 만들며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중학교 신입생이 부르는 트로트를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가를 모니터링하게 하는 절호의 기회였어. 어른 흉내를 내지 않고 자기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창조하는 촉촉한 기법에 색소폰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그는 우리 대중가요의 장래를 점치게 하는 미래가 촉망되는 소년이야.

처음부터 안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가수는 바로 평범함을 거부하는 김호중이야. 성악 가수가 트로트를 어떻게 접목시켜야 하는가의 과제를 안고 결승까지 진출한 가수였지. 보기 드물게 높고 폭넓은 음역대를 가진 그는 한국의 파바로티라고 해도 손색이 없어. 그러나 아직도 완성이 덜 된 듯한 그의 성악적 토로트 창법은 더 갈고 닦아야 하겠어.

휴가가 끝나 군부대에서 맹훈련을 한 김희재도 좋은 가수야. 무대를 휘어잡는 절도있는 매너도 일품이지만 멱살춤과 의자춤을 곁들인 노래는 트로트의 진정한 흥을 느끼기에 참 좋은 가수였어. 장민호는 예선 때부터 구사일생으로 결승에 진출한 미남가수이지. 정동원과 호흡을 맞추면서 삼촌의 이미지로 자신을 배경으로 깔아준 그 넉넉한 여유가 인상 깊었어.

우리의 트로트는 그동안 일부 특정 세대만이 선호하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노래였어. 10대가 이런 노래를 부르면 애기 늙은이 취급을 받았으니 20대에서도 쉽게 부르지 않았지. 처음 시작은 유럽 음악계의 FOX-TROT라는 빠른 2박자의 댄스 음악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해.

일본 강점기에 일본가요의 ‘엔카’로 변형 도입되면서 우리 특유의 트로트로 발전했으니 전통가요라는 명칭으로 이해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야. 1930년대에 트로트는 이애리수의 ‘황성 옛터’, 고복수의 ‘타향’,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등으로 시작되었지.

단조 5음계의 2박자가 대부분이었던 트로트는 그 당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울분과 뼈속까지 들어찬 가난에 대한 한(恨)을 담은 가사들이 많았기에 일터와 가정에서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애창곡이었어. 사실 그 당시 이런 노래들 말고는 듣고 부를 노래도 별로 없었지.

이들 노래는 세상에 대한 욕망, 갈등, 체념, 패배, 자학, 연민 등의 주제를 가슴 절절한 사연으로 담아 우리 부모님 가슴으로 파고들었어. 애절한 한의 정서가 그대로 부모님의 피와 뼈를 타고 우리의 노래가 된 것이었지.

60년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와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는 심장을 꿰뚫는 가슴 아린 창법과 중후한 목소리가 일품이었어. 그 뒤로 목포 가수 남진, 하춘화, 나훈아 등으로 명맥을 이으며 지금은 다양하고 독특하며 꺾기 창법이 특징인 우리의 노래가 된 것이지. K-POP이 세계적인 인기를 끈 이유도 우리의 전통과 얼 속에 내재된 한의 정서에서 나온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만의 공감능력이라고 생각해.

우리의 청소년들은 부모 세대로부터 받은 간접 경험을 믹서하고 공유하며 핏줄 속에 잠재우고 있어. 또한 한(恨)의 절절한 슬픔을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명랑한 메시지로 전달하기에 주저함이 없었지. 그간 K-POP에 가려 우리의 전통 가요인 트로트가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해도 틀린 말은 아니야.

그러나 K-POP과 트로트는 한 뿌리에서 나온 우리 노래의 두 갈래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 7명의 결승 진출자들은 이미 각자 독창적인 음을 지배하고 실력있는 가창력을 가지고 있어. 우리에게 익숙한 이전의 전통가요를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K-TROT를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 해.

K-POP과 함께 K-TROT가 동남아시아를 헤집고 유럽을 강타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해. 그들이 펼치는 우리의 흥과 멋스러운 가락이 한민족의 혼(魂)이었음을 너무 뒤늦게 깨달아서 미안해, 영화를 제패하였으므로 이젠 음악에서도 우리의 우수한 음악을 세계 곳곳에 전파하도록 마음을 모아줄게.

코로나19로 지쳐있는 3월, ‘봄을 이길 수 있는 겨울은 없다’ 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며 ‘달려라 대한민국, 힘내라 대한민국’을 외칠게. 트로트야, 그 동안 미안했어. 앞으로는 더 많이 사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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