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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생
  • 나동주
  • 승인 2020.02.1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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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동주∥前 영광교육장

마치 첼로의 저음(低音)처럼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音色)이 매력적인 가수 최희준이 향년 82세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2018년 8월 24일 그 날! 그의 노랫말처럼 ‘인생’이란 나그네길로 영원히 떠났습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3학년에 재학하던 최희준은 훗날 가야금 명창이 된 황병기와 함께 참가한 서울대학교 축제에서 샹송 '고엽'을 불러 입상한 뒤, 1959년 졸업과 함께 법학도(法學徒)의 길을 접고 미8군 무대에서 가수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수많은 히트곡 중에서 1964년에 발표한 '하숙생'은 지금까지도 우리 모두의 심금(心琴)을 울리는 명곡으로 남아 있습니다.

인생의 덧없음을 시적인 노랫말로 표현한 최희준의 〈하숙생〉처럼 대중가요가 인생을 철학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관조(觀照)한 노래는 일찍이 없었을 것입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 어디서 왔다가 / 어디로 가는가 / 구름이 흘러가듯 / 떠돌다 가는 길에 / 정일랑 두지말자 / 미련일랑 두지 말자 /

최희준은 어차피 인생은 나그네길이니 정(情)도 미련도 두지 말 것이며, 구름이 흘러가듯 이 세상 유유히 떠돌다 가자고 노래합니다. 결국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의 하숙생에 불과하니까.

인생은 벌거숭이 / 빈손으로 왔다가 / 빈손으로 가는가 / 강물이 흘러가듯 / 여울져 가는 길에 / 정일랑 두지말자 / 미련일랑 두지 말자 /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남루(襤褸)한 옷 한 벌 없는 빈손으로 가는 벌거숭이에 불과하다는 불변의 진리를 잊지 말 것이며, 강물 같은 인생은 소리 없이 흘러가니 인생사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가 아니겠는가라고 속삭입니다.

부처님은 인간의 생(生)에 대해 ‘다만 모를 뿐’이라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초대하지 않았어도 인생은 저 세상으로부터 찾아왔고
허락하지 않아도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간다.
찾아왔던 것처럼 떠나가는데
거기에 무슨 탄식이 있을 수 있으랴. '본생담, Jataka, 本生譚' 중에서

우리는 인생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어느 누구도 인생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인생은 온 것을 모르며 가는 것 또한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경 ‘시편 103장 15절’에서 ‘인생은 풀과 같은 것이며, 들에 핀 꽃처럼 한 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없는 것’이라 하였으며, ‘디모데전서 6장 7절’에서는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의 무상함이 절절히 묻어나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살았을 흔적조차 사라질 우리네 인생이 참으로 허망하기만 합니다.

1954년 가수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는 이렇게 읊조립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결국 봄날은 갑니다. 필연적으로 시간은 가고, 세월도 가고, 인생도 갑니다. 봄날이 가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평생 사랑을 노래해 온 한 원로 시인은 절절한 연애시를 쓰고 나서 시작(詩作) 노트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나 아직 사랑을 잘 몰라요!”

또한 한평생 인생에 대해 질문하고 삶을 궁리한 어느 원로 철학자는 인생을 논(論)하는 두꺼운 책을 써 놓고 그 후기(後記)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사랑도 인생도 우리는 그 실체를 알지 못합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사랑이고 인생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린왕자가 사는 별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인생이란 ‘기댈 것 하나 없이 혼자 힘으로 사는 것’이라 했고 시인 정완영은 ‘살아도 살아도 인생은 외로움이더라’라고 했으며 시인 정호승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모든 인간은 혼자일 수밖에 없으며, 홀로 태어나고 홀로 죽습니다. 그러기에 외로운 존재입니다.

결국 최희준이 '하숙생'에서 노래한 인생의 의미는 이처럼 수많은 명사(名士)들의 견해와 그 맥을 같이 합니다. 따지고 보면,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인생은 하염없는 나그네길입니다. 우리는 모두 허허로운 벌거숭이가 된 채, 그 나그네 길을 걷습니다.

양보하며, 배려하며, 사랑하며, 늘 겸손하게 사는 것이 인생 하숙생들이 걸어야 할 참다운 나그네길입니다. 더불어 인내하고, 용서하고, 희생하며 늘 역지감지(易地感之)의 지혜가 발휘되는 아가페(agape)적인 삶이야말로 인생 하숙생들이 걸어야 할 참다운 인생길입니다.

인생이란 비웠다가 채우고, 채웠다가 비우는 그러나 결국은 비워야만 하는 허무한 숙명 같은 것! 그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러기에 봄날처럼 짧고, 꽃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우리의 인생은 차라리 텅 비워버린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때인지 모릅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왕가위(Wong KarWai) 감독의 화양연화(花樣年華)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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