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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에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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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에 생긴 일
  • 송기원
  • 승인 2013.07.0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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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풍양초등학교 교장

전국적으로 장맛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고, 중부지방에는 어김없이 많은 비가 오고 있다는 7월 2일.

이곳 남녘 하늘은 높고 옅은 구름보다 빈 하늘이 넓어 보여 장마는 아직 멀었지 싶다. 이날 퇴근을 하고 10분쯤 지났을까, 학교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선생님들을 위문하기 위해 장흥에서 교감선생님 사모님 일행이 오셨다. 마침 근처에 계신 분들까지 오시도록 해 여덟 분이 교감 사택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저녁 7시 40분은 어둠이 내리기 전이다. 여섯이서 산책길에 나섰다. 코스는 유자공원이다. 저녁을 든든히 먹은데다 유자나무 사이에서 나오는 바람이 시원함과 향을 온몸으로 느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노래가 연이어졌다. ‘이게 행복이고, 여기가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 안에는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몇 갈래 있었다. 오늘은 오른쪽으로 가보자고 제안했다. 약간 내리막길이라 조심조심 걸었다. 문영우 선생은 낚시할 때 쓰는 렌턴을 모자에 달고 교감선생님 장모님 손을 잡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길가 유자밭에 묘지 한 봉이 보였다. 거기에 사람 같은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누구시냐고 물었다. 말씀이 없으시다. 대답도 없고 일어서지도 못하는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저녁 8시 20분이라 어둠은 이미 내린 시각이다. "어디에 사시느냐? 왜 여태껏 여기에 계시느냐? 무엇하시느라 늦었느냐?"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우리 일행 중 가장 젊은 문 선생이 업었다. 작년에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난다고 했다.

“어머니, 어머니….” 계속 말을 붙이며 할머니를 1Km 쯤 떨어진 댁까지 업어다 드렸다. 한동(유자공원이 있는 마을)에 사시는 김 할머니(81세). 대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밝혔다. 매실을 따느라 늦었다고 했다. 누렇게 익은 매실은 서 되 정도나 될까. 김 할머니께서는 오늘 아침 마루에서 내려오다 넘어져 허리를 전혀 못 쓰셨다. 내일은 투석하러 병원에 가신다고 했다. 저녁 꼭 챙겨 드시고, 오늘처럼 늦게까지 바깥일 하지 마시라고 일러두고 나왔다. 우리가 그 시간에 그 길로 산책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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