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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평가제 전면시행, 재검토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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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평가제 전면시행, 재검토 돼야"
  • 구신서
  • 승인 2013.08.3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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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신서∥전남교육정책연구소장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는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교육과학기술부, 2011.12.13)을 통해 성취평가제 도입을 발표했다. 성취평가제는 학교 내 상대적인 학력수준을 9등급으로 나타낸 석차등급제를 성취기준의 도달 정도를 척도화(A-B-C-D-E)한 성취평가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취평가제는 상대평가로 인한 학생들 간의 경쟁 유발이라는 한계를 극복해 학생의 성취정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 성취수준에 적합한 다양한 학습이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성취수준 설정의 모호함으로 인한 내신의 무력화, 학교 현장의 준비 미흡 등 그 부작용 또한 계속 지적돼 왔다.

이에 지난 8월 27일, 교육부에서는 '대입 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시안)'을 통해 성취평가 결과의 대학입시 반영을 2019년까지 유예하는 조건으로 성취평가제를 2014년 고등학교 1학년부터 추진하기로 했다. 성취평가 결과의 대학입시 반영이 유예된 점은 현행 대학입시체제하에서 성취평가가 그 취지에 맞게 운영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교육부에서 어느 정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 성취평가 도입에 따른 문제점= 성취평가제도의 도입과 같은 평가제도의 변화는 어떠한 교육정책보다도 교육현장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이다. 이는 학교에서 실시하는 학생들에 대한 평가결과가 상급학교 입학전형 자료인 내신의 기능을 포함하고, 평가제도가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입시정책이 바뀌고, 입시를 대비하는 학생, 학부모, 학교에게는 혼란과 불안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등학교 평가제도의 변화가 학교와 사회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생각해볼 때, 2012∼2013년 시범학교 운영을 거쳐 2014년 고등학교 보통교과에 전면 시행하기로 예정돼 있는 성취평가제의 시행은 대학서열체제 완화가 전제가 되고 학교현장에서 준비가 되었을 때 장기적인 차원에서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왜냐하면 학교 현실을 무시한 성취평가제의 강요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교육을 왜곡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성취평가제는 현행 대학입시체제 하에서는 그 의미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다. 대학에서는 학교별 성취수준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내신 무력화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며, 이는 73% 이상(2013학년도 기준)이 수시로 진학하는 전남지역 학생들에게는 더욱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둘째, 성취평가제의 시행은 고교의 서열화를 조장할 것이며, 이로 인한 전남지역 학생들의 이탈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석차등급제가 고교평준화정책에 의거하여 모든 학교에 균일한 등급을 부여하는 방식이었다면, 성취평가제는 학교별 성취수준의 차이를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성취수준이 객관적이기보다는 자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고, 성취수준의 학교별 차이가 서열화를 조장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셋째, 2014년 성취평가제 전면 시행에도 불구하고 교육 현장은 아직 성취평가에 대한 이해와 준비가 부족한 상황이다. 성취평가제의 도입은 평가관의 큰 변화를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은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준비 없이 바로 내년부터 도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대학입시체제가 엄존하는 현 상황에서 단위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성적이 유리하도록 소위 ‘내신 부풀리기’를 암묵적으로 실시할 것이며, 학부모들로부터는 분할점수 설정의 객관성에 대한 각종 민원에 시달릴 것이다. 또한, 교육부 차원에서는 성취수준에 대한 각종 지도·감독이 이뤄져 사실상 교사들의 평가권이 크게 제한될 것이다.

넷째, 성취평가제는 교육부가 계획하고 있는 대입전형 개선방안에 적합하지 않은 방법이다. ‘대입전형 간소화’는 전형의 수를 줄이면 수험생의 부담을 줄여줄 것이라는 일종의 착시효과를 주지만,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결국 학생부, 논술, 수능 모두를 준비해야 하는 점에서 결국 ‘무늬만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계획되었기 때문이다.

대학서열체제 해소와 고교 교육과정 정상화가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련된 대입제도 개선방안(시안)과 성취평가제의 시행은 불일치할 수밖에 없으며, 기존 석차등급제가 유지된 상황에서 성취평가를 실시하는 것 자체가 형식적인 운영이 우려된다.

■ 성취평가제 도입과 관련한 제언=성취평가 결과와 상관없이 석차 9등급을 대학입시전형에 활용되는 상황에서 성취평가제 운영은 현장의 혼란을 초래할 뿐이며, 교사의 평가업무 부담과 평가권의 침해, 기존 상대평가에 근거한 형식적인 성취기준 설정 등 그 부작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형식적인 운영이 예상되는 성취평가제에 대한 시행 유보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학진학에 중등학교 평가과정이 종속되어 있는 기형적인 상황에서, 현행 대학입시를 고려하지 않은 교육평가체제의 변화는 공허한 이상에 그칠 수밖에 없다. 대학서열체제 완화가 전제되지 않는 성취평가제의 시행은 재고돼야 한다.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교육부는 성취평가제의 도입보다는 지역별, 학교별로 균등한 조건을 조성해 선의의 경쟁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대학입시에서 지역별, 학교별 균형 선발 원칙을 만들거나, 도시와 농어촌 지역의 교육인프라 균형을 위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현재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는 '농어촌교육발전특별법'이 제정돼 농어촌학교에 대한 안정적 재원 마련이 시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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