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조 여사가 주고 간 아시내 돌 솟대
상태바
조 여사가 주고 간 아시내 돌 솟대
  • 이기홍
  • 승인 2023.10.10 17: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기홍∥전 목포교육장

조귀순 여사는 아시내에서 불쌍하게 살다간 여인이다. 청상과부가 되어 아무것도 없는 살림살이에서도 삼 형제를 잘 길러낸 전설 같은 얘기의 주인공이다. 나로서는 집안의 형수뻘이라 그런지 조 여사의 귀천이 가슴 아팠다. 이대로 보낼 수만은 없어 인터넷 비(碑)라도 세워주자는 심정으로 조 여사에 관한 글을 썼다.

블로그에 올리고 신문에 내려고 썼는데, 한 인생에 관한 글이다 보니 아들들의 동의가 필요할 것 같아 막내아들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초안을 보냈다.

며칠이 지나자 응답이 왔는데 조 여사가 장한 어버이상도 탄 적이 있다며 감사하다는 반응이었다. 삼 형제가 글을 돌려보고 의견을 교환하고는 공개에 동의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래 나는 장한 어버이 상에 관한 내용을 첨삭해 글을 완성한 후 신문에 기고했고 블로그에 올렸다. 절대빈곤의 시절 억척스럽게 살아낸 이야기 때문이었는지 내 글치고는 독자들의 반응이 꽤 뜨거웠다. 결국 내 글이 조 여사의 인터넷 비(碑)가 된 셈이다. 아마 인터넷 구석 어딘가에 남아 조 여사의 삶이 되새김질되며 오래도록 전해지리라. 

그러다 조 여사가 잠시도 떠나지 않고 살다간 아시내이지만 그녀의 세 아들들은 더 이상 아시내를 찾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이지만 부모형제가 살지 않고 남겨진 재산도 없는데 수도권과 마산에서 살고 있는 조 여사의 아들들이 아시내를 찾아주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 엉뚱하게도 평생을 살다간 아시내에  조 여사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시내 입구에 귀천한 조 여사 이름으로 돌 솟대 한 개를 기증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막내아들에게 권해봤다. 그러자 삼 형제가 의논한 끝에 그렇게 하겠노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동네 분들에게 자초지종을 알렸고 모두가 동의한 가운데 조 여사 비(碑)를 세운다는 심정으로 그녀의 출생일과 사망일을 새기고 세 아들들의 이름을 새겨 동네 입구 가장 좋은 곳에 돌 솟대를 세웠다.

한국삼함대 바로 앞에 있는 한국석재에 의뢰해 백오십만 원의 비용을 들여 지난 9월 달 12일 날에 세운 것이다. 추석을 맞아 삼호 납골원에 모셔진 아버지 어머니를 뵙고 또 기증한 돌 솟대를 직접 보기 위해 조 여사 삼 형제가 아시내를 찾았고, 나를 만나기 위해 집에 들렀다. 찻잔을 놓고 상당 기간 정담을 나누며 돌 솟대 기증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기증을 하기 전보다 기증을 하고 난 후의 그들의 반응이 사뭇 다르다는 점이었다. 특히 평생을 건설 현장에서 살다시피 한 둘째 아들이 돌 솟대 기증을 너무나 뿌듯해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놀라웠다. 아시내를 찾은 그 삼 형제는 이미 어머니가 돼 버린 그 돌 솟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인간의 욕구에 관한 연구를 한 아브라함 메스로(Abraham Maslow, 1908-1970)가 1943년에 발표한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 중 가장 상위의 욕구가 자아실현의 욕구라고 했다. 번안해 영어로 To give stage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가 상대에게 그 무엇을 해주어 그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행복해지는 단계를 일컫는다.

명예 욕구(To fame stage)보다 상위의 욕구인데 자아실현의 욕구는 자기중심에서 타인 중심으로, 소유에서 무소유로, 형이하학에서 형이상학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욕구로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慈悲)의 경지에 가까운 상태를 말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절대적인 사랑, 유교에서 말하는 인仁)을 향한다고 할 수 있는데, 신의 영역과 통하는 경지라 할 수 있다.

자신과 타인 사이에 경계를 두지 않고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았는데도 세상과 이웃을 위한 행동을 하고 있더라는 경지를 말한다. 메스로는 자아실현의 욕구를 달성한 사람들이 느끼는 최상의 상태를 지고경험(至高經驗)이라고 표현했다. 

조 여사의 육신은 아시내를 떠났지만 조 여사의 혼(魂)은 그녀의 아들들이 조 여사 이름으로 기증한 돌 솟대를 통해 아시내에 남아 오래도록 아시내를 지켜줄 것이다. 무엇보다 어머니 이름으로 기증을 해 놓고 메스로가 표현한 지고경험(至高經驗)을 한 것 마냥 너무나 좋아하는 세 아들들의 흐뭇해하는 모습이 나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고인이 된 조 여사가 돌 솟대를 기증하자 아시내를 살다간 다른 고인들도 이어서 돌 솟대를 기증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말았는데, 그 결과 아시내는 아름다운 돌 솟대를 여섯 개나 품을 수 있게 됐다. 여러 망자의 바람대로 돌 솟대에 내려앉은 오리 여섯 마리는 물 불 바람을 막아주는 아시내의 수호신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내가 아시내 이곳저곳에 대나무 솟대를 세운지 여섯 해 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