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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동 선산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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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동 선산 묘역
  • 이기홍
  • 승인 2023.09.2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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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전 목포교육장

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마음에 켕기는 일이 있으니 부모님 모셔진 선산에 가서 나무 한 그루를 옮겨달라는 것이었다. 동생은 지금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2년째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공장에서 일을 하다 지게차에 다리를 다쳐 열 차례의 수술에도 불구하고 퇴원을 하지 못하고 지금은 항생제 깁스라는 단계의 치료를 받고 있다. 처음에는 신체적 아픔으로 나날을 견뎠으나 지금은 마음의 상처로 휴대폰을 매만지며 하루해를 보낸다.

동생이 몇 해 전 부모님 묘소 주변에 황금측백을 심었는데, 심다 보니 한 그루가 모자라 근방의 다른 묘역에서 너무 베다 싶은 한 그루를 뽑아다 심었다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병실에 있다 보니 그 일이 자꾸만 맘에 걸려 내게 전화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동생의 마음을 짐작한 나는 점심을 먹자마자 선산으로 향했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렸으나 일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휴대폰으로 현장의 사진을 찍어 보내기를 수차례 반복해 뽑아다 심은 황금측백을 찾아냈고 근방의 묘소를 찾아 뽑은 자리에 도로 가져다 옮겨 놓을 수가 있었다. 동생의 맞는다는 말과 형인 내게 죄송하다는 말을 끝으로 그 일을 마무리했다. 

온 김에 예초기로 담숙제 제각 주변을 예초했다. 담숙제 극창문 입구에 향나무를 집단으로 심어놨는데 잘 돌보지 않으니 수풀인지 향나무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많은 문원들이 벌초 일로 일 년에 적어도 한두 번은 다녀가건만 관심을 두지 않기에 내가 퇴직 후 지금까지 근 10년 동안을 일 년에 한두 번씩 돌보고 있다.

아직 모양은 나지 않지만 얼마 지나면 선산 문지기 역할을 잘해 내리라. 묘소로 가는 숲길 가에 길을 덮어가는 풀을 듬성듬성 베었다. 이번 추석을 맞아 문원들의 어린 손주들이 성묘하는데 바짓가랑이라도 씻기지 않기를 바래본다. 조부모님 묘역으로 들어가기 전, 장가도 들지 못하고 젊은 날 하늘로 간 동생 뻘 문원의 수목장 표지석을 지났다.

자손도 없이 혼자 공무원을 하다 생을 마쳤는데, 부모와 처자식이 없어 퇴직금이 형제들에게 상속됐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니 모든 것은 희미해지고 초라한 묘표만 남았다. 누군가는 벌초를 해 줘야 할 것 같아 10평 남짓 표지석 부근을 정성스럽게 다듬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체됐다. 조부모님 손들이 잠든 묘역에 다시 와 자세히 살펴보니 얼마 전에 5촌 조카가 벌초를 해서인지 단정했다.

동생이 다치지 않았을 때는 거의 격주로 관리를 해서 그림처럼 아름다웠는데 동생이 못하게 되자 보다 못한 5촌 조카가 나서서 자주 돌보게 된 것이다. 내 입장에서 고맙기 그지없고 한편으로는 미안하다. 전화로 묘소를 다녀간다는 말을 전해 올 때마다 5촌 조카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아버지 집으로는 장손이라 나름대로는 책임감을 갖는 거겠지만 지금 세상에 그런 조카가 어디 있겠는가.

고마울 따름이다. 조카가 정성스럽게 조부모님, 부모님, 숙부모님, 그리고 납골묘 주변을 벌초를 해놔 단정하기 이를 데 없지만 둘러보니 손이 빠진 곳이 있어 주로 외곽을 꼼꼼하게 다듬었다. 작은 아카시아 나무와 잡목을 처리하고 나니 묘역이 한결 넓어진 것 같았다. 집안을 정리한 것 마냥 개운하기까지 했다. 예초기 칼날에 잔돌이 부딪치기에 돌을 두어 주먹 주워 한곳에 버렸다. 

돌아오는 길에 심호흡을 하며 2백만 평도 더 되게 펼쳐진 드넓은 학파농장을 둘러보았다. 지난날 학파농장에는 소작인의 눈물이 그렁그렁했는데, 포근한 비안개가 자욱했다. 멀리 무송동에서 학파동과 서호동으로 다시 아시내로 이어지는 학파농장에는 온통 나락으로 가득했다. 나락 익는 내음새가 빗속인데도 코 끝에 느껴졌다.

나락 농사를 70여 마지기 짓고 있는 아시내 이장 말로는 잎마름병이 번져 수확이 떨어질 것 같다지만 익어가는 나락이 질서 정연하게 고개를 숙여가니 아름답기 그지없고 또 감동이 출렁였다. 올 추석도 지난 내 70년 추석처럼 월출산 천황봉에 떠오르는 달과 함께 그렇게 잘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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