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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스포츠 클럽 대회 "작은 학교들은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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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스포츠 클럽 대회 "작은 학교들은 서럽다"
  • 양선례
  • 승인 2023.09.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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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례∥고흥동강초 교장
<strong>양선례 동강초 교장</strong>
양선례 동강초 교장

출근 준비를 마치고 서둘러 장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전남 스포츠 클럽 도 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남자, 오후에는 여자 피구 경기가 열린다. 한 팀의 피구 선수는 후보를 포함해 12명이 필요하다.

스물네 명이나 빠지고 나면 학급에 남는 아이는 몇 안 된다. 결국 우리는 4~6학년 전부가 일부는 선수로, 남은 아이는 응원 부대로 총출동했다. 경기장인 장흥 향원중학교까지는 순천에서 한 시간이 걸렸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우리 아이들이 경기를 마치고 막 나오고 있었다. 타이어 공기압이 낮다는 경고등이 들어온 걸 보고 장거리를 운전할 수는 없었다. 문 여는 곳을 찾아 이리저리 돌다 보니 오전 아홉 시에 열리는 첫 경기를 보지 못한 것이다. 아쉬웠다.

체육관에는 함평초와 매안초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양 팀 선수 대부분이 키도, 덩치도 컸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큰 두 아이가 수비에 가담해 양쪽에서 공을 주고받으며 기회를 노리다가 빈틈이 보이면 재빠르게 안에 있는 상대 팀을 공격했다.

겉보기에는 도저히 초등학생으로 보이지 않았다. 공의 속도도 어찌나 세고 빠른지 어른이 받기에도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저 피하는 게 상책으로 보였다. 한동안 접전이 이어지다가 결국 함평초의 승리로 끝났다. 알고 보니 그 학교는 작년 도대회 남자 우승팀으로 전국 대회에도 나갔다고 했다.

지역 예선을 치르고 올라온 학교는 모두 여덟 군데다. 전교생이 천 명이 넘는 대규모 학교가 세 곳, 3백 명 넘는 학교가 세 곳, 남은 한 곳은 2명이 모자란 백 명이다. 그에 반해 우리 학교는 62명뿐이다. 게다가 3~6학년을 통틀어도 남학생은 모두 열 아홉, 도움반 학생 두 명을 빼면 열일곱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출전 종목은 피구와 풋살 두 종목이나 된다. 지역 예선에서 우리보다 훨씬 큰 학교와 맞붙었다. 운동 신경이 없는 아이를 제외하고, 남은 아이를 두 종목으로 나누다 보니 2학년이 네 명이나 선수로 뛰었다. 조금 더 승산이 있는 풋살에 고학년 선수를 배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 선수와 한눈에 보기에도 체격 차이가 상당했다. 그 작고 마른 아이들이 공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보면 응원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컸다. 그런데도 수월하게 이기고 도대회에 출전한 것이다. 스포츠 클럽 대회는 한 선수가 한 종목에만 참가할 수 있다.

되도록 많은 학생에게 고루 기회를 주려고 정한 규정이겠으나, 우리처럼 작은 학교는 이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다른 종목과 날짜가 겹치지 않으면 10학급 미만의 소규모 학교는 선수 운용을 학교 재량에 맡겼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번만 봐도 피구는 이틀, 풋살은 하루만 경기를 치르는데 날짜가 다르기에 규정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무참하게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남은 작은 학교가 과반에 이른다. ‘작은 학교 살리기’가 전남 교육의 큰 과제라고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한다. 말로는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관계자는 미처 이런 문제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도 스포츠 클럽 대회는 큰 학교의 잔치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다른 학교에서는 6학년이 주축이 되는데, 그럴 수가 없는 소규모 학교는 여기까지 올라온 것으로, 다른 학교의 들러리가 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오전 11시가 되자, 우리 아이들이 출전하는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됐다. 체구도, 키도 작은 우리 아이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주눅이 들어 있었다.

어찌나 갸녀린지 몇 명은 무릎 보호대가 흘러내렸다. 경기 중에 자꾸만 그걸 끌어올리는 2학년 아이를 보노라니 고래와 새우의 싸움이 떠올랐다. 천 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서 뽑힌 6학년 중심의 상대 팀 선수들과는 기량 차이가 많이 났다. 약자에게 마음이 쏠리는 게 인간의 본성일까. 응원꾼 대부분이 우리 팀을 응원했으나 결과는 큰 점수 차이로 지고 말았다.

심판과 경기 진행을 맡은 요원도 2학년이 출전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안타까워했으나, 그들에겐 규정을 따라야만 하는 의무만 있을 뿐이었다. 출전 종목이 하나뿐인 여자 피구 경기는 우리도 고학년 위주로 팀을 꾸릴 수 있었다. 물론 운동에 재능이 있는 4학년도 몇 명 끼었지만. 점심을 먹고 오후에 치러진 여자 피구 첫 번째 경기에서는 우리 팀이 이겼지만 두 번째 경기는 반대였다.

우리 팀 에이스가 그만 독감에 걸려서 후보 선수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는 책임감 때문에 무리해서 첫 번째 경기도 뛴 터였다. 공격은 맞지 않고, 수비는 공을 쉽게 놓쳐 상대편으로 공격권이 넘어가는 일이 이어졌다. 한 번, 두 번 실수가 반복되더니 급격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어른의 경기에서도 흐름이 중요한데 경험이 적은 아이들은 말해 무엇하랴.

잔치는 끝났다. 승패와 상관없이 우리 선수들 그만하면 잘 싸웠다. 점심을 먹고 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삼각 편대로 서서 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연습하는 아이들을 자주 보았다. 운동을 즐기고, 친구와 어울리는 그 시간이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토요일엔 풋살 대회가 열렸다. 선생님 셋이 휴일인 데도 아이들을 인솔했다. 피구와는 다르게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기가 치러졌다. 기대한 종목이었는데 첫 경기에서 아깝게 지고 말았다. 점심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중이라는 담당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창밖에 비 쏟아지는 걸 보면서 먹는 삼겹살은 더 맛있으리라. 우리 아이들, 배부르게 먹으면서 패자의 설움을 몽땅 털어버리기를, 오늘의 경험이 내일의 거름이 되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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