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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한 송이 꽃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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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한 송이 꽃을 보내며
  • 박 관
  • 승인 2023.07.2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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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관∥교육칼럼니스트

“아름다운 꽃은 꺾지를 맙시다. 꺾은 꽃은 버리지 맙시다. 버린 꽃은 줍지도 맙시다”라는 글귀가 크게 의미 없는 듯하면서도 마음으로 다가옴을 어쩌랴.

23세 꽃다운 청춘의 선생님이 자신이 사명처럼 여기던 사랑을 나누어줄 대상이 없는 현실을 보곤 죽음의 길로 가셨단다. 과연 누가 이 아름다운 청춘을 꽃 한 번도 못 피운 채 죽음의 길로 몰아넣었단 말인가? 

학생 인권조례가 그러했는가. 아니면 극성스러운 학부모들의 지나친 자식 사랑의 결과물인가. 그것도 아니면 교사들의 과잉 대응이자 대우받고자 하는 타성 때문인가. 모두 다 원인일 수도 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이 2023년에 갖고 있는 총체적인 모순으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하다.  

교사들의 입문 과정을 보면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나와서 임용되게 되는데 거기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성향이 대체로 원만한 성격을 지닌 학생들이 주로 지원하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정년퇴직할 무렵의 나이에 친구들끼리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다.

“교직에 있었던 사람이 사업을 하면 다 망하고, 일반직종에서 가장 착한 사람과 교직에서 가장 악한 사람과 비교하면 교직에서 가장 악했던 사람이 그나마 착한 사람에 속한다고" 

물론 사회 현상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교직 사회가 갖는 속성을 잘 표현한 말로 받아들여 진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거나 대화를 하다 보면 “선생님, 제 아이는 때려서라도 제발 좀 잘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진심 어린 부탁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학생들도 자신이 잘못하면 으레 벌을 받을 각오를 하곤 했다.

그때 교사는 ‘스승’으로 자리매김했다.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아날로그 시절의 이야기다. 요즘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이 감당해야 하는 업무를 보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가닥을 풀어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전혀 말이 먹히지 않은 학생들과의 상대, 일방적으로 교사를 괴롭히는 학부모의 민원, 험한 말이나 집단행동은 못 할 것이라고 여긴 교사들의 성격을 역이용해 몰아붙이는 사회 분위기(그중에서 특히 사법부의 판결 결과). 자신이 과연 “학생들에게 사랑을 주거나 인생을 가르치려고 하는 본연의 역할로 이 자리에 있는가. 아니면 학생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학부모의 민원을 잘 해결하러 왔는가” 하는 자괴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지 모를 일이다.

1980년대 전교조가 탄생할 즈음에 주장했던 바가 ’교사는 노동자다‘라는 관점이었다. 교사를 ’성직(聖職)‘ 처럼 여기던 그때의 사고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주장이었고 최소한 ’전문가‘ 의 입장이 돼야 한다고 우리 사회는 요구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참으로 지고지순한 생각이었다.

지금은 교사가 전문가는커녕 감정 노동자에 불과하다. 교육현장에서 갑(甲)이 아니라 을(乙)이다. 아니 을도 되지 못하고 정(丁)쯤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동안 유야무야 지나쳐 왔던 교육풍토를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해방 후 낙후된 경제문제로 등한시된 인권 문제가 민주주의 사회의 최우선 과제로 등장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속출하는 것은 비단 교육현장의 문제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갖는 큰 숙제이자 꼭 풀어가야 할 명제다.

수 천 년 동안 억눌려 왔던 청소년들의 감정이 화산처럼 폭발한 현상이 지금의 학교 교실 모습이리라. 지금이 극한이다. 이 극한 상황이 더 지속 돼서는 안된다. 이쯤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이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획기적인 방향 전환으로 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반환점의 시기다. 

이번 서초동 교사의 추모식에 모인 5.000여 명 추모교사의 바람이 무엇인가? 어떠한 모임의 주관자도 없이 단지 고인이 당했던 일과 유사한 경험을 했기때문에 대한민국 교사들이 모였다. 유명을 달리한 꽃다운 청춘 후배 교사의 영혼이 고이 잠들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겠다는 바람을 안고.

이제는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때다. ’수오지심(羞惡之心)‘ 이 강한 그대들이여. 이제는 학생과 생긴 부딪침을 자신의 역량 부족으로 생각하지 말고 동료 교사들과의 집단사고로 풀어가야만 한다. 혼자 끙끙대다가는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고 화병과 우울만 생겨난다. 

교장, 교육장, 교육감, 교육부 장관 등 모든 교육기관장도 어정쩡한 위치에 서지 말고 교사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교권 강화에 힘써야 할 때다. 가만히 있으면 누구도 평화와 안식을 가져 다 주지 않는다. 자칫하면 아동 학대죄로 몰리고 마는 교육현장에서 누가 감히 열성적으로 학생을 가르치려고 하겠는가. 열성적인 교사가 법규를 벗어났다고 불이익을 받은 사례가 너무나 많다.

이러한 법규에 짓 눌려 교육활동이 제약받을 수밖에 없는 교육 현실을 누가 알쏘냐. 사회적인 각성도 중요하지만 법의 규정이 교육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지름길이다. 그래서인가. 교권의 헌법적 명문화에 부단한 노력을 더 하라고 외치면서 후배 교사는 한송이 꽃도 미처 피우지 못하고 먼저 가셨나 보다. 참으로 사람 사랑하기 어려운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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