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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뒷처리는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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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뒷처리는 그만하자"
  • 박주정
  • 승인 2023.06.10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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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정의 콩나물 교육(22)

깊은 잠에 빠져있던 새벽 2시쯤, 전화가 왔다. 한 아이가 자살을 했다고 한다. 자살 관련 업무를 맡고 처음으로 죽음의 현장을 찾아간 날이다. 위치를 물어보니 우리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파트였다.

이미 앰뷸런스와 경찰차가 와 있었다. 현장은 노란띠를 둘러 출입을 금지시켰다. 아이는 18층에서 뛰어내렸다. 비참한 광경이었다. 가족들은 바닥을 내리치며 통곡했다. 지금도 그날의 현장을 잊을 수가 없다.

“○○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나도 너 따라 가겠다 이놈아.” 장학사가 된 지 석 달도 안 돼서 또 한 고등학생이 나무에 목을 맸다. 안타까운 사태는 멈추지 않았다. 2년이 넘도록 나는 ‘뒤처리’만 했다. 내 모습이 너무도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스스로를 미워하고 자책했다. ‘이토록 무기력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시신 수습이나 사건 처리, 부모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사람으로서, 선생으로서 할 수 있는 도리가 그것밖에 없어서 마른침을 삼켜가며 겨우 말했다. 학교나 교육청은 무엇을 했느냐는 원망이 많았다. 내가 한 일은 그야말로 사후약방문, 뒤처리에 불과했다.

‘도대체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하고, 교육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아이들이 이렇게 죽으면 가서 시신을 치우고 뒤처리만 하면 담당 장학사로서 할 일이 끝난 것인가.’ 수많은 날을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밤에 전화가 오면 ‘덜컥’ 가슴부터 내려앉았다. 수화기를 드는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면서 ‘우울증’이라는 것이 나를 옥죄기 시작했다.

여러 사건을 대책 없이 수습하는 것보다는, 단 한 명이라도 예방해서 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 교육청이 해야 할 일을 나름 정리하고 실천 방안을 모색했다.

먼저는, 담임선생님이나 보건 교사, 상담 교사가 조기에 징후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생명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이 학생들에게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에게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할 방법을 알 수 있는 학부모 교육이 꼭 있어야 한다.

학생들과 오랜 시간 생활하는 교사들의 혜안이 필요했고, 학생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는 내실 있는 생명존중 교육, 그리고 자녀 문제를 기관과 연대해서 치유할 수 있는 학부모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했다.

광주 시내에 있는 이 분야 전문가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전남대학교 간호학과 김수진 교수를 회장으로 추대해 각 분야 전문가들을 모시는 한편, 관심 있는 선생님들도 초청했다. 약 100여 명의 전문가 집단이 구성됐다. 이분들과 함께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교육할 각종 자료를 만들었다.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 모두들 열정이 넘쳐났고 진행은 빨랐다.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진지한 내용의 자료를 만드느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교육 준비가 끝나자 학교에 공문을 보냈다. 생명존중 교육 요청이 들어 온 학교마다 방문하여 예방교육을 실시했다. 강당 같은 곳에 모아 놓고 하는 대규모 교육보다는, 여러 명의 강사가 찾아 가는 학급별 밀착 교육을 진행했다.

전문 강사들이 학생, 학부모, 교사 연수에 투입됐다. 아이들이 왜 우울해하는가, 아이들의 우울증을 빨리 발견하는 방법, 중증 정도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 위기관리 위원회를 여는 방법 등을 교육했다. 선생님들과 학교장들이 크게 환영했다. 학생과 학부모도 잘 받아들였다.

심리 문제가 조기에 발견된 아이들의 경우 첫 번째 조치는 자살충동을 다스리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학교에서 꿈을 찾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찾아가는 생명존중 강사단’ 프로젝트도 온 나라에 소문이 퍼졌다. 전국에서 우리가 만든 자료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자료를 보내주고 인터넷에도 탑재를 했다. 교육부뿐 아니라 여러 다른 기관에서 수차례 격려를 받았다.

이제 15년이 흘렀고 지금도 이 사업은 계속되고 있다. 한때 학생 자살률이 높았던 광주가 이제 많이 줄어들었다. 함께 해준 생명존중 강사분들과 생명의 전화 장식 실장에게도 늘 감사하고, 빚진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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