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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린 틀을 깨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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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린 틀을 깨지 못할까?
  • 김광호
  • 승인 2023.05.3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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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여양중 교사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변화에서 가장 힘든 것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갖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삶에서 틀을 깬다는 것은 혁명이며 개혁이다.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이다. 양반이면서 양반의 무능을 비판한 연암 박지원과 지금까지 없었던 음악장르를 선보인 서태지와 아이들을 찬양하는 이유이다.

연암의 ‘열하일기’완본은 그의 생전에 출간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필사본이 먼저 돌아 사대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조선 사대부들은 청나라는 오랑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급변하는 나라밖의 모습을 보았다.

연암은 열하일기에서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틀에 박힌 고문체(古文體)가 아닌 구어체(口語體)로 글을 썼다. 즉 그는 기존의 문체를 따르지 않았으며 시장 거리에서나 쓸 법한 문체로 다양한 작품을 완성했다.

정조는 열하일기가 기존의 문체로 쓰지 않았다고 잡스러운 책으로 취급했으며 연암에게 반성문을 고문체로 써오라고 명까지 내렸다. 그러나 연암은 자신의 죄가 너무 커서 반성문을 쓸 수 없다고 거부하며 자신의 뜻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연암은 노론명문 집안이었기에 큰 화(禍)를 천만 다행으로 면 수 있었지만 정조는 곧바로 고문체 이외의 문체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더불어 새로운 문체로 적혀 있는 책 수입을 금했으며 과거시험에서 고문체로 쓰지 않은 답안지는 불합격 처리했다. 이것이 문체반정(文體反正)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문체나 글은 권력이다. 연암은 그 동안 사대부들이 기존의 고문체만 쓰고 있을 때 그는 글의 내용에 따라 풍자와 비판을 넘어 익살과 유머를 담아 유연성 있게 글을 썼다. 그의 이러한 문체는 마치 클래식부터 트로트에 랩까지 자유분방하게 보여주는 스펙트럼 같았기에 후대에 창조적인 작품이라고 칭송을 받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1990년대까지 한국 음악계는 트로트와 발라드가 음악 장르를 지배하며 가사와 감정만을 뒤바꿔가며 기득권을 누리고 있었다. 이때 해성처럼 나타난 서태지와 아이들은 현실에 불가능한 음악 양식을 선보였다. 그들은 ‘난 알아요, 하여가, 컴백 홈, 발해를 꿈꾸며, 교실 이데아’등 앨범을 발표하며 대중음악의 흐름을 뒤바꿔버렸다. 

그들은 기존의 음악 장르를 답습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음악적 스타일로 승부를 걸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전에 없던 멜로디와 랩과 댄스를 보여주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1992년 ‘난 알아요’라는 노래를 공개했을 때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넘어 자성의 시간을 갖게 했다.  

이들은 92년부터 96까지 음악활동을 하면서 독특한 트랙과 진솔한 가사로 청소년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특히 개인의 자유와 꿈을 억압하는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획일화된 교육에 대해서도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그들은 혁신적 음악 장르를 완성해 나가면서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93년에 2집 앨범으로 돌아왔는데 당시 그들은 흔히 레게파머라 불리는 드레드룩 스타일로 모습을 드러냈다. KBS는 그들의 옷과 머리 스타일이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출연정지를 내렸다. 

또한 그들이 4집에서 ‘시대유감’노래를 수록했을 때 공연윤리위원회에서는 가사 내용이 부적절하다고 판정을 내리며 내용을 바꾸라는 요구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은 가사를 끝내 바꾸지 않았으며 가사를 제외한 음악 소리만으로 앨범을 발매했다.

이러한 통증의 과정은 머지않아 사전심의제도, 복장규제, 방송사의 갑질 등등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사전심의제도의 폐지는 물론이고 복장 및 개인의 자유와 의지를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됐다.     

연암 박지원과 서태지와 아이들은 분명 다른 시대에서 살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기존의 관습을 뛰어넘으며 새로운 문화 양식을 개척했다. 만약 그들이 기존의 틀에 고개를 숙이며 도전장을 내밀지 않았다면 열하일기나 허생전과 같은 작품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 한류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K팝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혹 연암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틀을 깨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린 창조와 비판 정신이 그 틀 안에서 가냘픈 숨을 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린 기성세대가 언제나 그들의 삶의 정신을 다음 세대에게 강요하며 틀 안에 넣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변화는 결코 간절한 바람이나 소망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 바람은 언제나 틀을 깨겠다는 비판 정신과 다른 틀을 제시하겠다는 창조 정신을 낳는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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