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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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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으로의 초대 
  • 이기홍
  • 승인 2023.05.2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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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前 목포교육장

2023년 5월 15일 42회 스승의 날, 나는 정대성 목포교육장 초대를 받고 목포교육청 청사로 향한다. 10년 전 나는 22대 목포교육장을 끝으로 교직을 떠나왔다.

당시 내가 살았고 교육장 관사가 있었던 목포 우성 아파트에 주차하고 10년 전 청사로 출근했던 그 길을 따라 걷는다. 11시까지 나와 달랬지만 그날을 추억하고 싶어 조금 일찍 서두른다. 오랜만에 교육장 재직시 입었던 양복을 찾아 하늘색 와이셔츠에 빨간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그때처럼 출근길을 걷는다.

목을 조여 오는 넥타이가 불편하고 양복 상의가 부자연스럽지만 오랜만에 복장을 갖춰 입으니 새로운 느낌이 든다. 출근길에 관용차가 오겠다는 걸 걷고 싶으니 그러지 말라고, 퇴근길에 관용차가 가겠다는 걸 걸으며 생각하고 싶으니 그러지 말라고 했던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10년 전과 달라진 것은 별반 없다. 그 길, 그 가게, 그 가로수가 나를 반긴다.

횡단보도 건너 기역자로 돌고 다시 횡단보도 건너 니은자로 돌아가는 길이 아늑하다. 그때보다 색이 바랜 아파트 담장, 그때보다 더 녹음이 우거진 가로수, 오래도록 남아있는 그 가게가 정겹다. 꿈은 크게 가져야 깨어지더라도 조각이 크다며 호기 있게 출발했던 그때,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을까.

새내기 자모들이 하루빨리 어울리게 하기 위해 추진한 오월 어머니 배구대회는 잘 한 일이었을까. 법적 기간이 지난 학교 부지를 풀어주라는 민원을 처리했는데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사립유치원 연합회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쳐 공립유치원 증설을 유보한 일이 있었는데, 목포교육 100년 지대계에 걸맞은 일 처리였을까.

흔들리쟎코 피는 꽃 어디 있겠냐며 선도에 치중한 학교 폭력 대책은 실효성이 있었을까. 나는 목포교육장이니 목포에서 삶을 일구는 업자가 낙찰되도록 해야 한다며 입찰시 목포시로 지역 제한을 둔 것은 잘못은 아니었을까. 

청사로 접어드니 몇 그루의 나무들이 사라지고 대신 현수막 게첩대가 서 있다. 직원들의 앞길을 밝히겠다며 영암 삼호읍 한국 석재에서 사다 세운 쌍사자 석등은 그대로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맞는다. 현관 앞에 아시내 집에서 가져다 심은 무궁화가 오른쪽은 무성한데 왼쪽은 없다. 교육장실로 들어가니 20대 최경수 교육장이 먼저 와 나를 반긴다.

나 역시 반갑기 그지없다. 건강해 보인다. 지난 10년 세월이 길었는지 모든 것이 변해있다. 집기도 달라지고 실내 장식도 고급스러워졌다. 다행히 운시라는 서예 액자만 그 자리에 그대로 걸려있다. 구름 운(雲) 자가 알아보기 어렵게 써져 있기에 마침 한문 전공 장학사가 있어 그 액자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알아보게 했더니 구름 운자를 쓰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안내한 옥편을 보여주며 운행우시(雲行雨施)를 줄여 쓴 액자라고 설명을 해 주기도 했었다.

구름이 일면 비가 오듯이 모든 것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장자(莊子)의 천도편(天道篇)에 나온 내용이라고 했었다. 그 액자가 반갑다. 교육장 집무용 책상은 따뜻한 남쪽은 바라보고 있다. 나는 해 뜨는 동쪽을 향하게 놓고 집무를 했었다. 해 뜨는 동쪽의 서기를 받으며 집무를 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결재를 받으러 동쪽 출입구에서 들어오는 직원을 반갑게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집무용 책상 앞에 팔걸이의자를 놔두고 직원과 마주 앉아서 의견을 나누기도 했었다. 

11시가 되어가자 19대 강춘산 교육장, 23대 김재오 교육장, 21대 윤주신 교육장, 26대 김재점 교육장이 들어온다. 맨 나중에 광주에서 출발한 18대 오병인 교육장이 들어온다. 정대성 교육장은 8월 말에 정년 할 4개교의 교장선생님을 찾아 카네이션 화분을 직접 전달하고 늦게 들어온다.

목포교육청은 관내 모든 학교 68개교에 이미 스승의 날 기념 케이크와 카네이션을 전달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사람들이다. 덕담이 이어진다. 목포교육이 잘돼야 한다는 것, 새로운 교육장 만나 잘 될 것이란 것, 그러다 현직인 정대성 교육장에게 목포교육을 위한 지혜 한 수씩을 내놓는다. 

현실에 맞는 중등학교 이설 방안, 사립의 특수성을 고려한 중학교 학급 수 조정, 원도심 학교를 살리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 등 많은 지혜가 쏟아진다. 나는 정 교육장과의 추억 어린 시간을 회상하며 내 아픈 기억을 되살려 '옆에 있다고 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훈수 아닌 훈수를 한다. 교육장이 마련해 준 꽃다발을 받고 기념품을 받고 기념 촬영을 한다. 

자리를 옮겨 점심을 대접받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목포교육행정에 대한 속살을 아낌없이 주고받는다. 그러다 모두 다 자신들은 재직 시절 이렇게 전임 교육장을 모셔다 자문을 받지 못했는데 스승의 날을 맞아 이런 일을 감행한 정대성 교육장이 한 수 위이니 틀림없이 목포교육호가 순항할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점심시간이 조금 길어지자 정 교육장은 양해를 구하고 서둘러 귀청하자고 한다. 모든 것은 운행우시처럼 하늘의 이치대로 움직이면 틀림이 없다. 행복한 교실을 꿈꾸는 목포교육 또한 마찬가지리라. 청사를 나서며 나 없이도 더 잘해 나가는 목포교육을 온몸으로 느낀다.

며칠 후 강습 중에 있어 우리 일행을 맞이하지 못했던 조 교육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죄송하다며 내년에는 꼭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이하겠다고. 조 과장은 내 교직 마지막 6개월 동안 중등 인턴 장학사로 목포교육청에서 근무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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