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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간장 녹는 어미 노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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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간장 녹는 어미 노루 이야기
  • 박주정
  • 승인 2023.05.1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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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정의 콩나물 교육(20)

내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다. 초등학교 3학년쯤으로 기억된다. 나보다 2년 선배인 동네 형이 있었다. 집안이 어려워서 초등학교도 못 다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꼴통 중에 꼴통인 형이었다.

나무에 올라가서 새집의 알도 꺼내 먹었다. 간혹 빈 새집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을 잡아서 손목에 칭칭 감고 나무에서 내려왔다. 성질도 괴팍해서 자기 말을 안 들어주면 무조건 때리고 발로 차는 등 좀 이상한 사고뭉치였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나에게 내일 새벽 일찍 지게를 지고 자기 집으로 오라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괴팍한 성질을 몇 번이나 겪어봤기 때문이다. 새벽에 지게를 지고 그 형 집으로 갔다. 형은 나를 산속으로 데리고 갔다. 궁금했지만 형을 따라서 무작정 가고 있었다. 산속에 조그마한 보리밭이 있었다. 겨울철이라 날씨는 차지만 보리가 제법 파랗게 자라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보리밭에 꿩 십여 마리가 죽어 꽁꽁 얼어있었다. 형이 말했다. “어제 내가 꿩약을 이곳에 놨다.”  그 당시에는 노란 콩에 구멍을 파서 싸이나(맹독성인 청산가리)를 넣고 밭 가장자리에 놓아두면 꿩이 먹고는 죽었다. 겨울철에 먹을 것이 없어서 산중에서 내려와 덜컥 쪼아 먹는다. 처음 보는 일이고, 죽은 꿩이 많아서 놀랐지만 신기하기도 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꿩을 새끼줄로 묶어서 지게에 지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바위 근처에 왔는데 이번에는 노루 새끼 한 마리가 덫에 걸려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노루 새끼는 덫에 걸려 있다가 사람이 오니까 피하려고 바위틈으로 들어가려다 머리가 찢어진 것이다. 

형은 들떠있는 모습으로 자신 있게 말했다. “야, 주정아 새끼가 있으면 에미도 있어야.” 역시나 잠시 후 어미 노루가 나타났다.  나는 어미 노루가 불쌍해서 가라고 쫓았다. 새끼 노루 목을 새끼줄로 묶어서 끌고 가니까 어미 노루는 도망가지 않고 따라왔다. 형은 어미 노루까지 쉽게 잡았다. 

마을로 내려왔다. 동네 형들 누구누구 이름을 불러주면서 집으로 오라고 내게 시켰다. 나는 형들을 찾아가서 오라고 말했다. 형들은 너무 귀한 것이니까 마을 어른들도 모시자고 했다. 마을 어른들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그 형 집에 모였다. 어른들은 노루 피가 몸에 좋다면서  밥그릇에 받아먹었다. 그리고 살코기는 불에 구워 먹었다. 

그 다음 날, 어미 노루를 잡는 날이다. 사람들이 마당에 여럿 모여 있었다. 노루 피를 먹으려고 사람들이 밥그릇을 들고 서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노루 피를 먹은 사람마다 구토를 하고, 배를 움켜쥐었다. 노루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었는데 고기에서도 썩은 냄새가 난다고 했다. 먹은 사람들이 또 토하고 못 먹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노루고기를 두고 돌아갔다.

집에 와서 어머니께 이 사실을 말했다.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새끼 노루가 칼에 찔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애미 노루는 애간장이 타서 온몸이 썩은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났다.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주정아, 세상의 애미들은 자식들을 그렇게 사랑한단다.”

50년이 지난 옛날이지만 지금도 어머님의 그 말씀이 귓가에 뚜렷이 들려온다. 창자가 끊어지는 ‘단장(斷腸)의 슬픔’이 가장 힘든 슬픔이란다. 애(腸)가 끓는다는 것은 창자가 끊어지거나 녹는다는 것이다. 노래 ‘단장의 미아리 고개’처럼 말이다. 동물도 새끼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 정도인데 하물며 부모님의 자식 사랑은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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