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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안과의사의 눈 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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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안과의사의 눈 맞춤
  • 김 완
  • 승인 2023.05.1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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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 한장 칼럼(48)

몇 달 전부터 어머니의 왼쪽 눈에 뭔가 하얀 물질이 끼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생활에 불편이 없으시냐는 자식들의 걱정에 한사코 아무 문제 없다고 말씀하셨다.

손사래 후에는 꼭 ‘아흔을 눈앞에 둔 노인이 이 정도 불편도 없겠느냐’고 자녀들을 설득했다. 실제로 어머니의 일상인 간단한 바느질이나 농작물을 돌보는 일에 불편을 느끼시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저런 얘기들만 오가는 중에 어머니의 왼쪽 눈은 점점 정도를 더해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혹시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인데 괜찮다는 말씀만 믿고 안일하게 대처하는 것이 아닌가. 조바심이 일었다. 어머니를 보다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우선은 눈에 이물질 같은 문제가 생겼으니 무슨 문제인지 검진을 해보자는 자식들의 성화에 어머니는 겨우 승낙을 하셨다. 

어쩔 수 없이 진료를 승낙한 후에도 어머니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셨다. 점점 진료 예정일이 다가오자 별도로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의사 선생님께 ‘우리 어머니는 아흔이 다 되었다는 것을 꼭 말해 달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오래전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 놓으셨다.  

어머니는 20여 년 전에 고향에서 혼자 생활하셨다. 눈에 문제가 생겨 안과에 가셨다가 병원의 권유로 오른쪽 눈의 백내장 수술을 하셨다고 한다. 그때 수술 후의 처치를 혼자서 하시느라 꽤 힘드셨다는 말씀을 이제야 털어 놓으셨다. 계속해서 안과 치료를 미루셨던 것이 그 때에 생긴 트라우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으로서 매우 부끄럽고 죄송했다. 검진 후에 어머니의 승낙 없이 무리하게 치료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드렸다.

예약한 진료일이 됐다. 어머니는 무척 긴장한 모습이었다. 매우 특별한 날에만 하시는 쪽머리며, 단정하게 차려입은 옷매무새가 어머니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병원은 대도시의 꽤 번화한 거리의 대형건물 안에 있었다. 유명세만큼 사람들이 붐볐다. 간단한 절차를 밟고 검사실로 안내됐다. 검사실에는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첨단의 의료기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눈 상태의 검사는 흰색 가운을 입은 젊은 직원이 담당했다. 직원은 능숙하고 친절하게 검사를 진행했다. 간간이 사용하는 ‘어머니’라는 호칭이 그의 친절함을 더해 주었다. 직원은 어머니의 두 눈을 살펴보고 대충 짐작하겠다는 듯이 몇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시력검사를 시작으로 서너 개의 기기들을 사용해 눈 상태를 읽어냈다. 

한 시간쯤 후에 진료가 시작됐다. 진료실에는 자주색 가운을 입은 젊은 의사선생님이 세 개의 모니터를 연신 들여다보면서 어머니와 몇 마디 대화를 했다.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하고서 수술 일정을 스탭진과 의논하도록 권고했다. 능숙하지만 매우 사무적이었다. 짧은 장면 속에서 우리 가족은 매우 큰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의사선생님의 눈은 진료를 하는 동안 시종일관 모니터에 머물러 있었다. 환자의 눈의 상태도, 생활상의 불편함도 모니터만을 들여다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한 차례도 어머니와 눈을 직접 마주치지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의사는 수술을 권고했다. 안과 의사가 안과 환자의 눈을 직접 들여다보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가족은 지켜봐야 했다. 

이 현상을 첨단 의료기술의 발달에 따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첨단 의료기기가 환자의 두려움이나 심리 상태까지 읽어 낼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어머니의 안과 진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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