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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사고 신속대응팀 부르미제도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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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사고 신속대응팀 부르미제도의 탄생
  • 박주정
  • 승인 2023.05.0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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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정의 콩나물 교육(18)

8년전 광주시교육청에서 민주인권생활과장을 맡고 있을 때 일이다. 어느 날 중학생이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생명이 위독하다는 긴급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아이의 생사가 달린 위급한 상황인데도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가’ ‘학교에서는 어떤 조치를 했는가’ ‘안전교육은 실시했는가’를 두고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한심하고 부끄럽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날 바로 담당자들을 모아 긴급현안 회의를 열었다. 앞으로 학교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이유를 따지지 말고, 공문이나 형식적인 절차 없이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자고 제안했다. 위기 학생 신속 대응팀은 ‘부르면 즉시 달려간다’는 의미에서 ‘부르미’라고 명명했다.

‘2430 부르미 시스템’은 학교든, 어디든 위기상황에서 전화 한 통으로 부르미를 요청하면 ‘24시간 언제든지 30분 안에 긴급 출동’하는 조직이다. 공문이 없이도, 근무시간여하를 막론하고, 밤이고 낮이고 신속하게 대응해서 단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목표로 출범했다. 나는 3대 핵심 과제를 만들고 단장 역할을 자처했다.

​“언제든 달려간다.” “끝까지 책임진다.” “모두가 함께한다.”

​나는 장학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십수 년 동안 1백 회 이상 사고 현장을 보았다. 자살한 현장, 피범벅의 교통사고 도로변, 익사체 발견, 일가족 화재 현장, 학교폭력으로 중태에 빠진 학생, 쓰레기더미 같은 집에 방치된 아동학대, 성폭력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직간접으로 지켜보면서 역할의 한계를 자책했었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트라우마로 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부르미’의 출범은 무겁게 짓누르는 이런 책무감이 밑바탕이 되었고, 학교폭력 및 자살 사건이 끊이지 않는 와중에도 잘잘못을 따지는 담당자들의 대응 모습에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을 담은 결과물이기도 했다.

​부르미는 자살 사건만 다루는 것이 아니었다. 학생 간의 폭력, 학생 사고, 학생과 교사와의 다툼, 교사와 학부모 간의 갈등, 안전사고 등 다양한 사건으로 출동했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8년간 한 해 평균 160회, 총 1천 260여 회를 출동해 아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구하고, 위기 상황을 수습했다. 그런데 이처럼 밤낮으로 뛰어다녔지만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더 많았다.

근무하는 동안에도 각종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부르미는 아이들의 문제라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출동하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이란 메뉴얼이고, 메뉴얼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 사고를 상당히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설마하는 안전불감증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산업현장 인명 피해는 우리나라의 1/15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비결은 사고 예방부터 사고 처리까지 예방시스템과 정책에 있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특히 안전사고 예방정책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야 하는데 수많은 이유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 어떤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고자 할 때 어려움이 너무 많다.

​“이 일은 우리 기관 일이 아닌데요.” “지금까지 그런 사례가 없습니다.” “형평성에 어긋나서 안 됩니다.” “전담 인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안 된다는 이유가 오만가지다. 하지만 적극행정의 상징인 부르미는 3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세 가지 부르미 정신을 정립했다.

​“네, 우리가 하겠습니다.” “우리 학생 일이니 당연히 우리가 앞장서야죠.” 
“우리 부서 일은 아니지만 그 부서에 찾아가서 여러분의 입장을 대변해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교육계의 전국 최초 신속 대응팀인 부르미는 학생이 머문 곳이면 어디든지 전화 한 통화로 신속하게 출동해 초기 대응한다. 응급조치로 끝나지 않고, 이후 40여 유관기관과 협력하여 학생이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지원함으로써 모두가 행복한 교육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부르미의 기본 업무다.

광주교육청 부르미는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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