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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아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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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아내(1)
  • 강성률
  • 승인 2023.04.0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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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교수의 철학 이야기(93) 

철학자들은 아내를 어떻게 대했을까?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동양 철학자들보다는 서양 철학자들이 아내를 더 아끼고 사랑한 경우가 많았다. 투정 많은 아내에 대해 인내심을 발휘한 철학자로서는 먼저 소크라테스를 들 수 있다. 철학자들 가운데 소크라테스가 유명하다면, 크산티페 역시 철학자의 아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축에 낀다. 

그녀는 남편이 철학자라는 직업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썼다. 집에서 지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남편을 못살게 굴었다. 그것이 지겨워 소크라테스가 친구들과 철학적 담화를 나누려고 해도, 그녀는 그것마저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루는 집에서 제자들과 강론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잔소리를 했다.

이때 그가 들은 척 만 척하자, 아내는 큰소리로 욕을 하고 물을 퍼부었다. 그런데도 소크라테스는 태연히 “천둥이 친 다음에는 소나기가 오는 법이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녀는 심지어 남편을 뒤쫓아 가서 시장 한복판에서 옷을 마구 잡아당겨 찢기도 했다. 소크라테스의 친구들은 크산티페를 어떤 아내보다도 가장 견뎌내기 힘든 여편네라고 비난했지만, 소크라테스 자신은 그러한 일을 잘도 참아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은 아내의 잔소리를 어떻게 견디어 냅니까?”라고 묻자, 그는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도 귀에 익으면, 괴로울 것이 없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크산티페가 못살게 굴면 굴수록 소크라테스는 불화가 끊이지 않는 집을 나와 서둘러서 그의 철학적 담화로 빠져들었고, 이리하여 소크라테스는 비로소 소크라테스가 될 수 있었다.

만일 그가 서재에만 파묻혀 지냈더라면, 결코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끝까지 아내에 대해 인내심을 발휘했는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 있다. 아테네 법률에 의하면,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스물 네 시간 안에 처형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침 델로스섬에 있는 아폴로 신에게 감사의 제물을 바치러 떠난 배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에 대한 처형은 그 집행이 연기됐다.  소크라테스는 사면신청을 하지도 않고,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다. 한 달 후에 배가 돌아왔는데, 배가 들어오는 날 아침 일찍 그의 아내(크산티페)가 감옥으로 찾아왔다.

“당신은 부당하게 사형되는 것입니다”라고 하며 마지막으로 탈출을 권유하는 그녀에게, 소크라테스는 “그러면 그대는 내가 정당하게 사형되기를 원하는가?”하고 반문했다. 아무리 논리 정연한 소크라테스라 할지라도, 마지막 장면에서마저 아내에게 이런 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아내에 대한 그의 태도를 짐작해볼 수 있는 장면이 또 하나 있다. 독약이 들어오자 그는 단숨에 그것을 다 마셔버렸다. 그때까지 울지 않으려고 겨우 참고 있었던 제자들은 그가 약을 입에 대고 마셔버리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점차 감옥 안은 높고 낮은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소크라테스는 조용히 있다가 “내가 여인네들을 돌려보낸 것은 바로 이런 꼴을 보기 싫어서였네. 사람은 마땅히 조용히 죽어야 하네”라고 말했다. 돌려보낸 여인네들 가운데 아내가 끼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광주교육대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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