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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등굣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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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등굣길
  • 조숙진
  • 승인 2023.03.3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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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진∥수필가

봄의 전령은 슬그머니 조심스럽게 시간을 다스리며 지혜롭고 겸손하게 온다. 봄이 갑작스럽게 와서 준비 없이 마중하느라 깜짝 놀라거나 허둥대는 일이 있었던가.

들에서 일하시는 엄마의 얼굴에 반짝반짝 땀방울이 빛나고 겉옷을 벗어 놓은 그림자 밑에 꽃마리와 봄까치, 냉이와 쑥부쟁이가 재잘거리며 논두렁과 밭이랑을 깨웠었다.

여기 아파트의 할머니 품 같은 빈한한 화단에도 아직 이름을 알 수 없는 생명이 짝을 지어 혹은 무더기로 빼꼼하니 문밖을 내다보고 있다. 요즘 운동 삼아 아파트 동 사이를 걷는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약 20분 정도 걸으니 다리에 무리도 가지 않고 차들이 아직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아서 아파트와 접한 산의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

니체처럼 걷다 보면 생각해야 할 거리를 꺼내 걷는 시간을 다 채울 무렵 마무리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걷기만 해도 그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전혀 없이 산책을 이어갈 힘을 얻게 된다. 

꽃과 나무들의 얼굴에 살짝 손가락을 얹어 체온을 가늠하기도 하고, 관심 없던 차들의 종류와 이름을 읽어가다 보면 금세 시간이 지나간다. 경비원 아저씨들과 서로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고 경비실 앞에 꽂아 두는 지역 신문의 헤드라인을 읽기도 한다.

항상 애완견 산책을 시키는 그 집 그 아저씨, 헛기침하며 서성이다 비치된 신문을 하나 꺼내 가시는 할아버지 등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자연의 변화를 느껴보는 일이 이른 아침을 여는 의식이 되었다. 작은 아파트 단지 내에 일어나는 아침의 표정은 심심치 않은 재미를 안겨 준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으니 언니와 동생으로 보이는 초등학생 아이 둘은 아파트 출입문을 나서고 있고,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은 잰 발걸음으로 등교를 서두르고 있다. 그렇지. 중·고등학생이 학교에 가는 시간치고는 조금 늦었다. 일찌감치 아빠 손을 잡고 서툰 말을 건네며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는 어린 아기에게 짠한 마음이 인다.

에너지를 충전한 차들이 출근을 서두르는 시간, 누구나 머릿속에 오늘 하루의 시간표가 반듯하게 걸려 있을 것이었다. 오늘도 놀이터 근처로 접어드는데 두 여자아이가 서서 손전화를 만지고 있다. 시간상 학교에 가기에 빠르다고도 볼 수 있지만, 초등학교 2학년이나 잘해야 3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인지라 참견이 될 수도 있지만 다가갔다. 

“학교 가니?”
한 아이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대답할 생각도 없는 것 같고, 다른 한 아이는 친구를 기다린다면서 잠시 내게 준 시선을 거두어 폰에 옮겼다. 책가방 지퍼가 열렸음을 알려주고 오던 길로 돌아왔다. 

어릴 적 나도 친구를 만나는 아침이 바빴다. 해가 길어진 여름, 일단 아침밥을 먹으면 항상 바쁘신 부모님의 관심은 내게서 떠났다.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몰라도 좋았다. 어제 집에 와서 풀어보지도 않은 가방이라도 책가방만 챙기면 우리가 약속한 장소로 달릴 수 있었다.

학교로 출발하기 직전까지는 우리끼리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시간이 필요했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만나 학교 가는 길에 있는 마을 공터는 항상 가지고 놀던 공깃돌이 있었다. 쓱쓱 손과 발로 흙과 잔 돌멩이를 쓸고 보자기만 한 땅을 확보하고는 공깃돌을 펼쳐 놓으면 드디어 우리의 아침 놀이 한 판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공깃돌 놀이는 여자아이들 사이에 유행인 만큼 경쟁도 심상찮았는데 지기라도 하면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는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려야 했다. 흙 묻은 손과 옷을 대충 털고 학교로 향했다.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여자 아이들은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공깃돌 놀이나 핀 따먹기 등을 했고, 남자아이들은 딱지치기나 구슬치기에 푹 빠졌던 등굣길 놀이가 생각난다. 그때 비하면 요즘은 각자 주어진 폰 속에 하나 이상의 게임을 받아 들고, 모여서도 게임 이야기, 혼자서 걸어가면서도 게임 하기, 놀이터에서도 게임 하는 모습을 보면 돌연 변이급 놀이 문화로의 진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놀이 시간이 아침일지라도 시간만 나면 아이들은 유행처럼 놀잇감에 심취했고, 도구가 무엇이든 함께 즐기지 않으면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어린 우리의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동글동글하고 적당한 크기의 공깃돌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던가.

주변에 돌이 자취를 감추다 보니 친구들과 냇가에 나가서 큰 돌들 사이에 묻힌 자잘한 돌들을 치마에 싸서 모아 왔는데 빨래하러 따라갔다가 엄마와 함께 공깃돌을 주워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고 정겹다. 놀이를 마치고 나서는 어딘가에 숨겨 두었고 어른들은 모른 척 덮어 두셨을 것이었다. 

색도 모양도 종류도 다양하게 만들어 시판되고 있는 장난감들 사이에서 집에서 만들어 주는 아빠표 혹은 엄마표 장난감을 선뜻 가지고 놀겠다고 챙기는 아이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아오는데 그 아이들이 있었던 긴 의자는 비어 있다. 텅 빈 놀이터는 오후가 되면 하나, 둘 다시 채워질 것이다.

역시 학교도 같이 가고, 오고 가면서 수다도 떨고, 학교 끝나고 같이 놀자고 약속도 하는 친구가 있어야 학교에 다닐 맛도 난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서 한 번씩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의 공간이 많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빈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두 마리의 새들처럼 친구를 만나 재잘대며 걸어가는 등굣길이 하루 종일 기분 좋은 학교생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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