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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우리보다 더 철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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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우리보다 더 철이 없어요"
  • 박주정
  • 승인 2023.03.2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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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정의 콩나물 교육(13)

실업계고등학교 교사시절 공부에 흥미가 없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잦은 가출과 결석으로 학교를 포기한 아이들이 많았다. 담임을 맡아서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허사였다.

그래서 그들을 데리고 사는 것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광주시 북구 용전동에 4천평의 감나무 농장을 임대해 폐가를 개조해서 집을 만들어 그들과 10년동안 살았던 이야기다.

우리는 그 집을 공동학습장이라고 불렀다. 공동학습장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늦은 밤이다. 공부하다가 밤중에 학생들과 함께 닭죽을 쑤어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다.

넓은 농장에 수많은 닭을 키웠다. 닭이 몇 마리인 줄도 모를 정도였다. 달걀을 여기저기 낳는다. 풀숲에 가면 달걀이 무더기로 쌓여있기도 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달걀을 찾아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처음에는 날달걀을 먹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나를 보고 원시인이라고 했다.

“야, 너희들도 한번 먹어봐. 먹어 보고 말해.” 학생들도 약간은 비릿하고, 나중에는 살짝 고소한 맛을 알아갔다. 점차 그들도 잘도 주워 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닭을 잡는 일이었다.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닭 잡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목을 비틀어 죽이는 것이 너무 싫었다. 학생들도 기겁했다. 한번은 아이들이 죽이지는 못하고 살아있는 닭의 닭털을 뽑았는데 닭이 도망가버렸다.

학생들과 나는 한밤중에 후레쉬를 비추면서 동네로 내려간 닭을 잡으러 온 마을을 찾아 다녔다. 마을 주민들이 이 광경을 보고 저 선생과 학생들은 ‘약간 머리가 이상한 사람들’인 것 같다고 수군거렸다. 그러면서 학생들이나 선생이나 철이 없든지 부족하든지 하다고 소문이 났다.

닭을 잡아 찹쌀 닭죽을 먹으면서 우리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 밤하늘에 별을 보며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이며, 어떤 선생님 흉도 보면서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선생님과 제자가 아닌 친구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가끔은 미래의 꿈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너무 덥거나 짜증 나고 재미가 없을 때에는 저 건너 한재골로 빨간프라이드에 아이들을 태워서 몰고 갔다. 두 번 왕복하면 모두 여름밤을 즐길 수 있었다. 한재골에는 큰 저수지가 있는데 그 밑에 웅덩이가 있었다. 수영을 못하게 돼 있지만 우리는 밤에 가기 때문에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남녀학생이 함께 들어가 수영도 하고 물싸움도 하고 놀았다.

한번은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발밑이 따뜻했다. “선생님 빨리 피하세요, 지금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어요” 여학생이 오줌을 싼 것이다. 우리는 깔깔깔 웃으면서 오줌을 피해 물 밖으로 튀어 나왔다. 밤이 늦도록 도깨비 놀이, 귀신 놀이를 하면서 우리만의 여름밤을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항상 말했다. 선생님은 우리들보다 더 철이 없는 것 같다고. 그 철없던 시절이 세월이 갈수록 아련해지고 그립다. 지금은 중년을 훌쩍 지나버린 내사랑 제자들! 가끔 만나면 “선생님, 다시 그날로 돌아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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