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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 불까 고민하는 외손자 영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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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 불까 고민하는 외손자 영민이
  • 이기홍
  • 승인 2023.03.23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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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전 목포교육장

아침잠에서 막 깨어난 외손자 영민이가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했다. 볼탁지에 오른 살로 움푹 팬 듯이 보이는 입을 오물거리며 한참을 무슨 준비 동작만 하고 있었다. 왜 저런가 이상해 딸에게 물어보니 지금 울어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는 중인 것 같다고 했다. 

외손자 영민이는 배가 고프면 자지러질 정도로 큰소리로 사납게 울어버렸다. 우유병 젖꼭지가 입에 닿을 때까지 어찌나 큰 소리로 울어버리는지 저러다간 목청이 상할 것 같은 염려가 될 정도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녀석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찌 저렇게나 격렬하게 투쟁할 수 있는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그래 딸은 커피 포트로 미리 물을 끓여 따로 마련한 40℃를 유지하는 병에 항상 담아놓고 우유 타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있었다. 그리고 영민이가 젖을 청할 것 같은 시각을 미리 알기 위해 우유를 먹일 때마다 시각과 먹인 양을 기록하고 있었다. 

딸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인연이 닿는 혼처 자리가 나오지 않아 그냥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아내는 근 15연간을 딸 혼인문제로 고민했으며, 최근 5년여 동안은 거의 기진맥진했다. 나 역시 자존심이 무너지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내색을 하지 못하며 힘겹게 견뎌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우리 부부의 초라해져 가는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거의 수모 수준의 중매를 하는 지인으로 인해 견디기 어려운 아픔도 겪었다. 그러다 재작년 말 고향 지인이 중매를 해준 계기를 발전시켜 어렵게 결혼을 했다. 

딸은 나이가 많아 아기를 가질 수 있을까 염려를 했으나 천우신조로 아이를 갖게 되었고, 살 얼을 판을 걷듯 임신기간을 보냈다. 그리고 혈압 문제가 있다며 의사가 권유하는 바람에 예정일보다 10여 일 일찍 제왕절개 수술로 영민이를 얻었다. 

나는 2007년 친손자를 보았다. 그때의 느낌은 말이 모자라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다. 새 생명에 대한 외경심도 있었고,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맛본 휴식도 있었다. 손자에 대한 첫 경험의 느낌은 상당히 오래도록 지속됐다.

그러다 기쁨보다는 걱정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흐른 세월이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다시 새 생명 외손자를 보게 된 것이다. 그동안 보내오는 사진과 동영상만으로 외손자를 대했는데, 딸이 백일을 쇠고 싶다기에 잘 되었다 싶어 지난 3월 초, 2박 3일 일정으로 용인을 다녀왔다. 

영민이를 안아 보았다. 발도 살짝 만져보고 손가락도 조금 건드려 보았다. 내 푸르디푸른 시절 이것저것 모른 채 시골집 아시내에서 딸을 낳아 키우던 일이 되살아났다. 영민이의 모습 속에서, 통통한 발목과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에서, 영아 시절 딸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영민이는 내가 편안하게 안아주지 못해서 그런지 눈썹을 풀지 못하고 몸을 뒤척였다. 외손자의 살 냄새와 온기가 내게 스며들었다. 평화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지금 나와 외손자와의 온기가 섞이는 것이 평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오래전에 손자를 처음 안았을 때 느꼈던 그날의 느낌이 다시 더 새롭게 밀려왔다. 

외손자는 고성 이 씨로 지방 문중의 종손이다. 항렬자가 헤엄칠 영(泳) 자를 쓴다. 딸도 사위도 항렬자로 이름을 짓기로 한 것 같아 묵시적으로 지지를 보냈다. 이제는 우리 부부가 없더라도 울어 불까 고민하는 외손자 고성 이 씨 영민이가 있어 항시 염려되었던 딸이 결코 외롭게 지내지는 않을 것 같아 가슴이 편해진다.

눈을 깜박이고 입을 오물거리며 무슨 준비 동작을 한참 동안이나 하는 백일 된 영민이가 있어 고희를 넘긴 내가 안심이다. 아마 지금쯤 용인이 떠나가도록 울어버리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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