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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결혼(2) '헤겔과 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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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결혼(2) '헤겔과 원효'
  • 강성률
  • 승인 2023.03.1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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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교수의 철학 이야기(91) 

이번 호에서는 결혼을 매우 흡족하게 여겼던 서양 철학자와 공주와 하룻밤을 보냈던 한국의 한 스님이 등장한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서른일곱 살 때, 헤겔은 하숙집 부인과의 불륜관계로 인하여 루트비히라는 사생아를 낳고 말았다.

그녀는 딸 하나를 둔 부인이었는데, 그 무렵 남편이 멀리 떠나 있었다고 한다. 그의 불륜관계는 곧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그것은 교수 신분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대학에 머물 수가 없었다. 

직장을 잃고 아버지의 유산마저 바닥을 내버린 헤겔은 심한 가난상태에 빠졌다. 책에 대한 원고료 문제로 출판사와 심한 말다툼을 벌일 정도로 궁핍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작은 신문의 편집인이 되었다가 곧 그만두고, 친구의 소개로 고등학교 교장이 됐다. 이 무렵, 헤겔은 명문 집안의 딸과 결혼해 자녀들을 낳았다. 그는 이 결혼생활을 매우 만족스러워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한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세속적인 목적을 완전히 이룬 셈이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직장과 사랑하는 아내를 얻었다는 것으로, 이 세상에서 할 일을 다 한 것이기 때문일세. 직업과 애처(愛妻)는 개인이 추구해야 할 으뜸가는 행복이 아닌가? 그것 외의 것은 본질적인 주제가 아니네. 작은 항목이거나 주석(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알기 쉽도록 풀이한 글)일 뿐이지.”  

독일 관념론의 완성자임과 동시에 당시 독일철학의 태두이기도 하며, 공산주의 이론의 창시자 마르크스가 스스로를 그의 ‘수제자’라고 부르며 흠모했던 대철학자,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한 순간에 바꿔 버릴만한 위대한 사상가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행복을 느낀 시절이 있었던가 보다. 사실 이 세상에 남자로 태어나 어엿한 직업을 갖고 한 여자를 아내로 거느리며 하나의 가정을 꾸려가는 일이야말로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소박한 꿈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재치와 기지로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여, 첫날밤을 보낸 케이스. 신라의 고승(高僧) 원효는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오기로 맘을 먹고 길을 떠났다. 하지만 한 무덤에서 해골바가지의 물을 들이마신 다음 ‘모든 것이 맘먹기에 달렸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경주로 되돌아오고 만다.

그는 이때부터 대중들 앞에서 설법하기 시작하는데, 그의 법회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잘생긴 데다 우렁찬 목소리를 가졌을 뿐 아니라, 설법의 내용 또한 감동적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어느 날, 그는 “도끼에 자루를 낄 자가 없느냐? 내가 하늘을 받칠 큰 기둥을 깎아보련다”고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 뜻을 몰랐는데, 태종 무열왕(김춘추)이 ‘대사가 귀부인을 얻어 어진 아들을 낳고 싶은 모양이구나!’ 판단하고, 관리를 시켜 원효를 찾게 하였다. 물론 그의 과부 된 둘째딸 요석 공주를 마음에 두고서. 

때마침 다리를 건너는 순간, 관리들이 자기를 찾는 것을 눈치 챈 원효는 일부러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물에 빠져 옷이 흠뻑 젖었으므로, 관리들이 그를 가까운 곳에 있는 요석궁으로 안내하였다. 옷을 말리기 위해 옷을 벗고 하룻밤을 지내니, 공주와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 파계하고 말았다. 원효는 승복을 벗어버리고 자기를 소성(小性)거사 또는 복성(卜性)거사라고 불렀다.

그 후 요석 공주는 임신해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설총(이두 문자를 집대성한 신라의 유명한 학자)이었다. 그러나 원효는 결혼 2주 만에 회의를 느끼고, 다시 불자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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