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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쯤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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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쯤 가고 있을까
  • 이기홍
  • 승인 2024.05.1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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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前 목포교육장

장흥을 갔다 온 아내가 구운 장어를 사 왔다. 저녁 식탁에 앉아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먹었다. 원래도 밥을 빨리 못 먹지만 요즘 들어 이가 부실해졌는지 잘 씹어지지 않아 더 천천히 먹게 된다.

그래 식사 때면 먼저 먹은 아내는 소파로 내려가고 나 혼자 앉아 나머지 밥을 먹기 일쑤다. 상추에 소스를 묻힌 장어를 놓고, 또 잘게 썬 생강을 몇 가닥 놓고, 묵은지 한 가닥을 놓고, 또 싱거워 쌈장까지 놓고, 상추를 오므려 입에 넣는다.

그렇게 몇 번을 했는데 오므린 상추를 입에 넣으려다 보니 내가 티슈에 싼 장어를 입에 넣으려 하는 것이었다. 순간 너무나 놀라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는 조심하는데도 자주 음식을 흘리곤 해 앞에 티슈를 놓고 먹는 습관이 오래전부터 생겼는데 그만 그 티슈를 상추로 알고 쌈을 싸고 만 것이다. 

젊은 날에도 자주 있었지만 5년여 전부터는 좋게 말해 내가 건망증이 심해졌다. 수돗물을 틀어놓고 잊어먹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하루 동안 수돗물을 틀어 놓고 볼일을 보러 나가는 바람에 돌아왔을 때는 마당이 한강이 된 적도 있었다. 어떤 날은 어제 놔둔 삽이나 호미를 찾다가 한나절 해를 다 보낸 적도 있다.

개 묵이 밥을 주러 갔다가 개만 만지고 돌아서자 묵이가 심하게 짖어 그제야 깨닫고 다시가 밥을 준 적도 있다. 용돈을 어디다 놔둔지 몰라 찾다 찾다 포기하고 말았는데 어느 날 뜬금없이 엉뚱한 곳에서 나와 주운 것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젊은 날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도 잘만 해냈는데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고 말았다. 

건망증을 한자로 쓰면 健忘症으로 망증 중에서는 좋은 상태를 의미한다. 기억이 잠시 모호해졌을 뿐 상기시켜주면 떠 올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기억이 완전히 소멸돼 되돌릴 수 없는 치매와는 다르다. 치매는 뇌가 손상돼 나타나는 증상이지만 건망증은 뇌 용량을 초과해 일어난 현상이다. 건망증은 일어나는 현상이고 치매는 나타나는 증상이다.

어떤 일에 몰두하면 다른 일을 잊는 것이 건망증이고, 어떤 일을 하는데도 그와 상관없는 다른 일을 해 버리는 것이 치매다. 건망증 소유자는 일에 지치지만 쉬면 다시 의욕이 솟구치는데 반해 치매 환자는 일에 수동적이거나 북돋아 줘야 일을 한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나는 치매는 아님이 분명하다. 아침이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아시내는 정말이지 경로당이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다. 나라에서 에어컨도 두 대나 설치해 주고 공기청정기, 정수기, 냉장고, 소독기, 가스보일러 등 없는 것이 없다.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하다. 정기적으로 면사무소에서 나라미를 지원하고 부식비를 지원하고 난방비와 운영비를 지원한다. 그래 나는 천당 아래 아시내 경로당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외지에 나가있는 자녀들이 경로당 운영에 보태 쓰라고 끊임없이 지원이 들어오니 음료나 과일, 고기를 자주 사 먹는다. 그런 경로당에 며칠 전 치매 검사를 해 준다며 군 보건소에서 간호사 두 분이 나왔다. 내가 보기엔 정정한 이장이 시범을 보일 요량으로 첫 번째로 치매 검사를 받았다. 나 역시 혹 내가 치매가 아닌가 하는 염려를 하며 지켜보았다.

‘나는 어제 11시에 공원에 가서 그림을 보다 왔다.’ 간호사가 기억해 두라고 검사 전에 한 말이다. 검사 중간중간에 물었다. 몇 시에 갔냐고, 어디에 갔냐고, 거기 가서 무엇을 했냐고. 천당 아래 사는 나보다 열 살씩이나 많은 아시내 경로당 당원들은 귀도 잘 들리는지 척척 잘도 맞췄다. 그러자 간호사는 선물로 볼펜을 주고 가며 ‘내년에 또 올게요. 건강하세요’했다.

사실 나는 검사를 받으며 속으로 11시, 공원, 그림을 중얼거렸다. 나 역시 척척 대답했다. 아시내 노인네들은 치매 예방약이라고 거의 매일 삼봉 화투 놀이를 한다. 나는 하지 않는데 그래서 기억이 약해지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본다. 치매 예방을 위해 암기 연습을 하고 나름대로 건강관리에 유의하고 무언가를 메모한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에 분명 있었는데 사라져버린 기억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생각해 본다. 요즘에는 꾸는 꿈이 매우 구체적이다. 젊은 날 일상이 자세하게 재현된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상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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