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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혁이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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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혁이의 분노
  • 박주정
  • 승인 2023.02.2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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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정의 콩나물 교육(10)

내가 교사시절, 그러니까 지금부터 30년 전의 일이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탈을 일삼는 아이들 “소위 문제아”들을 광주 근교에 폐가를 개조해서 데리고 살던때 이야기다. 우리는 그집을 공동학습장이라고 불렀다.

비가 억수로 퍼붓던 날이었다. 공동학습장은 진흙밭이어서 마당 입구에서 집으로 걸어오기만 해도 신발이나 옷이 흙범벅이었다. 옷을 빨고 나서 밥 먹고 자려는데 한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진혁이는 어디 갔어?” “어~ 모르겠는데.” “야! 같이 사는 애가 안 보이면 어디 갔는가 관심 좀 가져봐!” “그 새끼는 혼자 있기 좋아해요. 그러니까 놔두세요.” “그래도 이렇게 비가 쏟아지고 천둥소리가 나는데 집에 없으면 찾아봐야 되지 않아?” “어디 방에 처박혔을 거예요.” “왜 말을 그렇게 해?”

“그 새끼는 맨날 불만투성이고요, 그리고 맨날 원망만 해요. 걔는요 두 가지 특징이 있어요. 한번 말을 안 하면요 열흘도 안 해요. 그리고 말을 하면요, 알아먹지 못한 이야기를 지 혼자해요. 싸이코에요. 싸이코.”

나도 익히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내가 그 사실을 모른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진혁이가 들어온 뒤로 계속 주시해왔다.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해서 늘 마음이 쓰였다. 아이들은 어딘가 박혀있을 거라면서 신경 쓰지 않았다. 갑자기 안 좋은 생각이 들어 혼자 불안했다. 캄캄한 들판에 비는 퍼붓고 창고, 토끼장 등 구석진 곳마다 진혁이를 찾아 헤맸으나 보이질 않았다. 보호자는 연락이 안 되고 진혁이는 휴대폰이 없었다.

강 건너편도 찾아봐야겠다고 강가로 갔는데 물이 불어나서 망설이고 있었다. 막대를 집고 건너갈까 멀리 돌아갈까 궁리를 하고 있는데 희미하게 진혁이의 모습이 보였다. 퍼붓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미동 없이 앉아 있었다.

“진혁아, 왜 이렇게 비가 오는데 맞고 있어?” 대답을 안 했다. 진혁이는 강을 보며 앉아 있었고, 나는 진혁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시간 넘게 아무 말 없이. 오한이 오고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진혁아 쌤이 너무 춥다. 돌아가자.” 평소에도 거의 말을 안 하던 애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가세요. 누가 오라고 했어요.”

나는 싸늘하게 말하는 저 이면의 얼음장같은 사연을 듣고 싶었다. 끝까지 버티기로 했다. 온몸이 굳어지고 이가 부딪쳐 달그락 소리가 났는데 진혁이가 그 소리를 들었는 모양이다. 

“가라니까요.” 짜증을 부렸다. “너 안 가면 나도 안 가.” “가요. 좀 이따 갈테니까.” “왜 그러는데.” “죽이고 싶으니까요.”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입에 담지 못할 욕이었다. 나는 듣고만 있었다. 누구냐고 묻지도 않았다. 짐작하건데 진혁이 부모인 것 같았다. 다음날은 맑았다. 진혁이는 그날도 거기가 앉아 있었다. 나도 아이 옆에 조용히 앉았다. 아마 밤 12시경부터 새벽 4시까지 같이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앞에는 불어난 물이 흘렀다. 우리는 하늘의 별을 보면서, 물소리를 들으면서 서너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진혁아 말해 봐! 뭐가 그렇게 힘든지.”

아이는 토해내듯 지나온 이야기를 했다. 버림받은 상처였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버렸고, 또 어머니에게도 버림받은 통한의 상처였다. 여기에다 할아버지에게 학대 받으며 자랐던 쓰디쓴 이야기를 퍼부었다. 강가에서 진혁이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울었다.

그 뒷날부터 벙어리라고 놀림받던 진혁이는 변했다. 말이 정말 청산유수였다. 사용하는 단어도 그렇게 세련될 수 없었다. 진혁이는 생각이 깊고, 마음이 섬세한 아이였다. 지금은 그 아이는 경기도 용인 어디선가 책방을 열었다고 한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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