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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사랑(2)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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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사랑(2) '니체'
  • 강성률
  • 승인 2023.02.2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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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교수의 철학 이야기(89)

지난 호에는 피히테(독일의 관념론 철학자)나 프로이드(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처럼 사랑을 향해 맹렬히 돌진한 철학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번 호부터는 사랑 앞에서 물러서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철학자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마음속으로는 열렬히 사랑하면서도 성격상 앞으로 나서지 못한 채 뒤로 물러선 경우, 또는 여자 앞에서 수줍어했던 철학자들이 있다. 니체(1844년~1900년, 독일 실존철학의 선구자)의 경우에는 여성에 대해 비정상적일 정도로 수줍음을 탔다.

언젠가 하인에게 억지로 이끌려 사창가에 가게 되었는데, 그는 잠시도 참지 못하고 재빨리 도망쳐 나오고 말았다. 그 때문에 싸구려 장신구와 속이 훤히 내비치는 얇은 옷을 휘감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여자들은 그에게 몇 소절 연주해 보일 틈도 없었다.

또 한 번은 먼발치에서 본 여배우에게 푹 빠져 특별히 그녀를 위해 작사 작곡한 노래를 그녀의 집으로 보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는 또 음악가 바그너의 부인 코시마를 연모했지만, 나중에 그녀를 자기 작품의 등장인물로 형상화했을 뿐이다. 그가 스위스에 머물 적에는 머리에 떠오르는 젊은 여자들에게 모두 초청장을 보냈다.

하지만 역시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그런데 그의 나이 서른여덟 살 때에 스물 한 살의 매력적인 여성에게 완전히 사로잡히고 만다. 그녀의 이름은 루 살로메(1861년~1937년, 독일의 작가이자 정신분석학자, 러시아 고급장교의 딸로서 니체, 릴케, 프로이트 등 당대 유럽 최고의 지성인들을 매혹시키며, 이들과 사랑과 교감을 나누며 창조적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여인으로 알려져 있음)로 젊고 총명한 데다 그를 숭배하고 있었다.

니체는 그녀를 처음 만나 “어떤 운명적인 힘이 우리를 서로 만나게 했나요?"라고 말했다. 그녀를 자신의 유일한 제자라고 생각한 그는 그녀를 믿고, 가장 깊숙이 감춰둔 비밀스런 이야기까지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감히 그녀의 손을 잡아볼 엄두도 내지 못한 그는 마침내 한 친구를 전령으로 보냈다. 그러나 역시 살로메에게 반해 있었던 이 친구가 그녀에게 청혼까지 하고 말았으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당연히 그 친구는 부정적인 대답을 알려왔고, 이러한 사연으로 인해 살로메와의 관계는 완전히 끝나고 말았다. 니체는 이때를 ‘내 생애 가운데 최악의 겨울’로 회고했고, 이제 ‘결혼한 철학자는 코미디에나 어울릴 만큼’ 결혼은 그로부터 멀어졌다. 

결국 유일하게 그의 곁에 남아 있던 여자는 그의 누이 라마였다. 그녀는 니체를 두고 ‘살아 있을 때나, 죽은 후에나 나의 남자’라고 선언한다. 그녀는 니체를 교묘하게 휘어잡아 꼼짝 못하게 하고서는, 심지어 그의 유고(遺稿)를 발간하는데 있어서 서류를 위조하는 것조차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사정을 통해 우리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너, 여자한테 가니? 그럼 채찍을 잊지 말아라!”라는 구절이 여성에 대한 니체의 태도를 완전히 잘못 전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니체는 여자 앞에서 채찍을 들만큼 용감한 사나이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여자를 경멸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는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망설이곤 했다.

이러한 이중성은 어릴 때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집안 분위기와 종교적 교육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학시절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한 결과 매독에 걸렸고, 말년의 정신마비 증세 역시 이 후유증이라는 설이 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삶, 그것이 바로 니체의 일생이었다.

[광주교대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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