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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는 축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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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는 축제가 아니다
  • 김광호
  • 승인 2022.10.3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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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여양중학교 교사

대한민국의 10월 29일 밤은 길고도 길었다. 시간은 이태원에서 축제를 즐기려는 젊은이들에게 새벽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다. 매정한 시간은 청춘들의 통증의 소리를 듣고 창백한 얼굴을 보고 나서야 아침을 돌려주었다.

할로윈 데이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런 참사를 몰고 왔는가? 할로윈 축제는 서양 문화에서 비롯된 의식이다. 중세 유럽에서 켈트족의 문화와 가톨릭 신앙이 혼합된 형태로 발전했는데, 그 이후 아일랜드에서 천대받던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그들만의 의식을 행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켈트족은 일 년을 열두 달이 아니라 열 달로 보았다. 그렇기에 10월 31일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한해 농사인 추수가 끝나고 길고 긴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1일이 바로 새해 첫날이었다. 그래서 그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10월 마지막 날에 축제를 열었다. 

특히 10월 마지막 날은 죽은 자와 산자의 경계가 열려 있어, 죽은 자의 영혼이 이승으로 내려와서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산자는 그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도 차려놓았으며 변장까지 해야만 망령들이 알아보지 못한다고 믿었다.

이 축제는 유럽 및 미국 어린이들이 1년 내내 손꼽아 기다리는 날 중 하나이다. 이날 아이들은 유령이나 괴물 의상을 입은 채 집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다니며 사탕과 초콜릿 등을 받아 가는, 그들만의 평범한 축제의 일이다. 

그들은 집 창문에 모형 거미줄을 걸고 마당에는 호박에 눈·코·입 구멍을 파고 등불을 넣은 '잭오랜턴'과 해골 인형을 세워두는 등 동네에서 가장 무서운 집을 꾸미려고 경쟁하며 전통을 이어왔다.

이처럼 할로윈 데이는 우리 문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축제이다. 우리나라도 언제부터인지 어린이는 물론이고 젊은 세대까지 그 행사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다. 더욱 아쉬운 것은 할로윈 데이가 우리나라에서 크게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층에서는 유흥 문화로 정착되어 정체불명의 축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고 당일 외신들도 이 참사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었는데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핼러윈을 맞아 엄청난 인파가 이태원에 모여들었고 이곳에서 150명 이상의 사람이 압사했다"며 "실외 마스크 착용 해제 등 코로나19 제한 조치가 해제된 후 열린 첫 핼러윈 행사인 탓에 더 많은 사람이 몰렸다"고 했다.

이어 "한국에서 할로윈은 어린이들이 사탕을 얻으러 가는 날이 아니다"라며 "20대 안팎의 젊은이와 파티에 가는 이들이 할로윈을 특유의 복장으로 치장한 채 클럽에 가는 주요 이벤트로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이번 참사는 비극이며 인재이다. 코로나19가 있기 전 2017년 같은 장소에서 할로윈 행사가 있었지만, 그때에는 이번보다 더 많은 20만 명 이상의 사람이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서울시의 사전 대비로 무탈하게 마무리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당시 서울시는 많은 사람이 축제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경찰과 안전요원을 적절히 배치하였다. 그리고 보행자의 안전을 위하여 일방통행로를 지정하고 보행자의 이동라인을 통제하며 안내했기에 질서정연한 상태에서 행사를 끝마칠 수 있었다. 

30일 MBC 저녁 뉴스에 의하면 “사고가 난 이태원 골목길에서는 18시부터 인파로 넘쳐나 곳곳에서 사고 발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전하며 경찰은 “주말 축제에 10만 명 이상의 사람이 모일 거라는 추산을 했으면서도 경찰 및 안전 요원을 배치하지 않았다. 다만 투입한 200여명 경찰 대부분은 마약 단속에만 나섰으며 처음부터 질서유지에는 계획이 없었다“ 고 말했다.

정부는 이태원 압사 사고 일어난 후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격으로 재난지역 선포와 애도 기간을 선포하는 처방전을 내놓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은가? 국민이 국민투표를 통해 국가의 보위와 자신의 생명을 책임지도록 폭넓은 권한을 주었는데 정부가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국민의 마음을 겸허하게 읽어야 한다. 국민은 윤석렬 정부에게 5년 동안 국민의 생명을 지켜달라고 모든 책임을 위임하지 않았는가? 정부는 국가의 중대사와 국민의 일상사를 내실 있게 뒷받침하기 위해서 정책별로 공부하고 연구하여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국민에게 선정과 애민을 몸소 보여 주었을 때 국민은 정부에 신뢰를 보낼 것이다. 

순자는 엄혹한 춘추전국시대를 살면서 법치주의를 군주에게 설파하였다. 그렇게 법치를 강조했던 순자 또한 군주에게 충언을 남기지 않았는가? 다름 아닌 군주민수(君主民水)의 철학이다. 그는 제왕편에서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다. 그 강물의 힘으로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그 강물이 사나우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君子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유명한 말을 남겼다.

국민과 대통령은 순자의 군주민수(君主民水)의 철학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군주는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맹자의 ‘여민동락(與民同樂)’ 또한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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