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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구두수선공 할아버지' 전남대에 12억 기부 훈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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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구두수선공 할아버지' 전남대에 12억 기부 훈훈
  • 이하정 기자
  • 승인 2020.04.20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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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출신으로 1969년 즈음 상경 식용유, 얼음 등 배달하며 명동과 인연
현금과 주택 등 12억원 상당 전남대 디지털도서관 건립기금으로 기부

[호남교육신문 이하정 기자] “어머니가 중학교 입학시험보라고 그렇게 권했었는데”

‘국민학교’ 밖에 못 나온 자신을 원망하며, 악착같이 벌어 모은 현금과 주택 등 12억 원 상당을 전남대학교 디지털도서관 건립기금으로 기부하기로 한 김병양 할아버지(84).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생각에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버지가 딴살림을 차리면서 하루아침에 가세가 기울었던 것이며, 어머니가 겪었을 맘고생을 헤아리게 되니 가슴이 아려왔기 때문이다.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 할아버지는 중학생이 되는 것 대신 직공이 되는 길을 택했다. “전남대학교(전신 도립농과대학 추정) 정문 앞 신안동에 있던 식용유 제조공장을 다녔어요. 전남대에도 수시로 드나들며 놀곤 했었지요. 그 당시엔 빨간 벽돌공장도 있었고, 주변은 온통 논밭이었는데 이제는 많이 변했지요?”

김 할아버지는 1969년 즈음에 상경해 식용유, 얼음 등을 배달하면서 명동과 인연을 맺었다. “남대문시장에서 짐받이 자전거에 물건을 가득 싣고 명동 한복판을 내달렸지요. 열심히 일한 덕에 돈도 제법 모았어요.”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1988년)였나. 배달일로 명동을 드나들던 것을 계기로 어쩌다 구두수선가게를 인수했다. 나이 쉰이 넘어서 구두수선공이 된 것이다. ‘명동 스타사’란 간판도 있어 예법 그럴 듯했다.

“명동 코스모스백화점 앞 귀퉁이에 자리한 하꼬방(판잣집)이었는데, 일이 많았어요. 뾰족구두며 핸드백은 물론이고 가방, 구두를 수선해 달라는 남자 손님들도 많았었지요.” 꼼꼼하고 정성어린 솜씨에다 서울 멋쟁이들이 죄다 몰려들었던 명동거리다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게 30년을 넘게 구두수선공으로 일했다. 한 때는 직원이 25명까지 늘었다. 유명 명품판매점이며, 백화점, 심지어 대기업들조차 김 할아버지를 찾을 정도에 이르렀다. 수선할 물건을 해외까지 보내는 것이 마뜩찮은 고객들도 자주 왔다. 가죽 염색약 냄새가 어찌나 독하던지 코가 얼얼할 정도였지만 묵묵히 견뎌내며 감쪽같이 고쳐냈다.

마침내 ‘수입명품 A/S전문점’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딸에게 물려줘 여전히 성업 중이다. 나이 탓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아내도 건강이 좋지 못하다. “자식들은 다 여웠고, 더 해줄 것도 없어요. 죽기 전에 고향에서 제일 좋은 전남대학교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예요.”

큰돈을 기부하기에 학생들에게 한마디쯤 당부할 말이 있을 법하지만, 없단다. “그저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하게 성장해 주면 좋죠”라며 겸연쩍게 웃는다. 전남대는 김 할아버지에게 감사패를 드렸지만 기부의 참 뜻을 기리는 다른 방안도 모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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