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여 편지함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글 저런 말을 보내왔습니다. 그 중 문득 마음 깊이 들어와 꽂히는 글귀 하나가 있었습니다. 화가 나서 한 번 치받으려다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면 내가 행복할까?’
짧은 두 줄의 글 속에 내 마음과 정신은 한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미워했던 생각도 지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삶의 양식이 되고 인생의 좌우명이 되는 짧지만 좋은 글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글들은 이 세상을 살다 간 혹은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스며 나와 정제되고 응고된 삶의 결정체일 것 같습니다.
그런 글들은 또한 한 인간의 무수한 고뇌와 번민이 만들어 낸 그리하여 얻게 된 삶의 깨달음이자 가르침이요 지혜라 할 것입니다. 서산대사의 ‘야설(野雪)’은 그런 면에서 보통 사람들은 물론이려니와 특히 지도층 인사들에게 그들이 처신함에 있어 반드시 새겨야 할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쌓인 들판을 걸어갈 때에는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모름지기 발걸음을 어지러이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반드시 뒤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오늘, 서산대사께서 입적(入寂)하시기 전에 읊었다는 ‘열반의 시’를 한 편 드리고 싶습니다. 세상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정신 위에 무겁게 놓여진 고뇌어린 삶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면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이 시가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게 무언가?
숨 한번 들여 마시고
마신 숨 다시 뱉어내고
가졌다 버렸다 버렸다 가졌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표 아니던가?
그러다 어느 한 순간 들여 마신 숨 내뱉지 못하면
그게 바로 죽는 것이지.
어느 누가
그 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는 공기 한 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저승길 가는 데는
티끌 하나도 못 가지고 가는 법이리니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자네가 움켜쥔 게 웬만큼 되거들랑
자네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자네 것 좀 나눠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자네 추억 씨앗 뿌려
사람 사람 마음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 없네
극락이 따로 없다네.
생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불타는 화로 위의 한 점 눈(雪)이로다
논갈이 소가 물위로 걸어가니
대지와 허공이 갈라지는구나.
6월의 어느 아침, 삶을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