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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의 작은 의식(儀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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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의 작은 의식(儀式)
  • 김 완
  • 승인 2023.12.26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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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 한장 칼럼(62)

월요일 아침이다. 한 주를 여는 분주한 일상이 지나고 나면 집안에 나 혼자 남는다. 책상 전용 행주를 들고 서재에 들어선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고 돌아서면 변함없는 책상이 나를 반긴다.

노트북, 독서대, 스탠드, 연필꽂이, 다이어리와 메모지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책상 위와 물건들을 꼼꼼하게 닦는다. 혼자 사용하는 물건들이니 특별히 더럽혀진 것은 없다. 그러나 닦는다. 기분이 상쾌하다.

월요일 아침에 책상을 닦는 일은 현직에 있을 때부터 가졌던 오랜 습관이다. 출근하여 오전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꼭 하던 일이 책상을 닦는 일이었다. 5분 내외의 짧은 시간이지만 책상을 닦으며 많은 생각을 한다. 지난주에 있었던 일들이 행주에 묻어 나오고, 곧바로 내가 감당해야 할 오늘과 금주의 일들이 하나둘 머리를 내민다. 먼지를 닦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다듬는 일이다.

아버지께서는 매일 아침 집 앞 신작로를 비로 쓰셨다. 아버지는 내가 유년을 막 벗어날 무렵에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15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 나의 뇌리에 새겨진 몇 개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선명한 장면이다. 병환 중에 쓸어낼 것도 별로 없는 도로를 왜 매일 청소하시는지 어린 아들은 궁금했다. 아버지는 쓸던 빗자루를 세워 의지하시며 말씀하셨다. “청소는 매일 해야 하는 거란다.”

20여 년 전에는 학교의 하루 시간표에 청소 시간이 있었다. 하루의 일과 중 꽤 비중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이 시간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아니 지겹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학교의 규칙을 지키지 않았을 때 벌칙의 하나로 청소가 주어지기도 했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핑계를 대서 기피하거나 눈속임으로 시간을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 누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80년대 초, 초임발령지에서 5학년을 담임했다. 아이들은 교내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개구쟁이들이 많았다. 청소 시간이었다.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지 않으면 청소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쓰레기를 교실의 구석진 곳에 밀어 넣고 얼버무리려던 녀석들이 마침 방문하신 옆 반의 호랑이 선생님께 들켰다. 아이들은 순간 얼음이 되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선생님은 아이들의 빗자루를 들어 시범을 보였다. “청소는 쓰레기를 구석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구석의 쓰레기를 쓸어내는 것이란다.” 

요즘의 아이들은 청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청소를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떤 효과, 어떤 기쁨이 있는지 알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청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닌 일이 되었다. 가정에서는 엄마 아빠가 하는 일이고, 학교에서는 도우미선생님이 하는 일이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사는 사회는 어떻게 될까.

청소는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삶 속에서 무엇인가 중요한 변화를 갖게 될 때, 새로운 다짐을 할 때 주변과 마음을 정리하고 다잡는 작은 의식이다. 일본인 시가나이 야스히로는 그의 저서에서 매일 청소 습관이 인생을 바꾼다고 했다. 연말이다. 이번 주 자녀들과 함께 새해맞이 집안 청소. 꼭 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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