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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자연인 첫날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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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자연인 첫날 보고서
  • 김 완
  • 승인 2023.09.03 19: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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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 한장 칼럼(56)

퇴직 첫날이다. 6시에 휴대폰의 기상 벨이 울렸다. 아내가 출근을 해야 하므로 아침 기상 시각이 달라질 수 없다. 여느 때와 같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휴대폰의 충전기를 뽑았다. 곧바로 휴대폰을 열어 진동모드를 소리 모드로 바꿨다.

이제 휴대폰 소리에 민감할 필요가 없어졌다. 전화벨이 울릴 때 수업중일 리도 없고, 회의중 일리도 없다. 나보다 먼저, 평생을 숨죽여 살았던 휴대폰이 자유를 찾았다.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여느 때와 같이 큰 접시에 계란프라이, 잡곡밥 약간, 소고기 몇 점을 얹었다. 오늘 달라진 것은 작은 반찬 접시에 개개의 반찬을 담은 것이다. 그간은 바쁘다는 핑계로 냉장고에 넣었던 반찬통을 그대로 놓고 식사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2~3분이면 가능한 일이었다. 핑계가 무색했다. 이 작은 변화로 식욕이 확 달라졌다. 냉장 온도와 상온을 힘겹게 오가던 반찬통이 여유를 찾았다.

7시 10분, 공부방에 앉아 붓펜을 들었다. 6개월 전부터 매일 붓펜으로 한자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일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 퇴직 전에 천자문 한 권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사자성어로 구성된 교재를 구입했다. 하루에 40개의 사자성어를 붓펜으로 정서하는 일이다. 이 시간이 매우 기다려진다. 집중해서 한자를 쓰고 나면 산만했던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40분이면 충분하다.

10시쯤, 휴대폰의 문자음이 울렸다. ○○전자서비스센터였다. 몇 개월 전에 냉장실의 칸막이 유리판을 깨트렸는데 여태 그대로다. 냉장실을 이용하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어제 서비스센터를 방문했었다. 유리판 하나를 구입하는 일이어서 곧바로 해결될 줄 알았는데, 오늘 다시 와야 한단다.

“알겠습니다.” 쉽게 대답했었다. 간편복을 입고 센터로 향했다. 직원이 부품을 꺼내 놓았다. 내가 필요한 부품이 아니었다. 의사소통의 오류다. 다시 설명했더니 내일 다시 오란다. “알겠습니다.” 시간을 가진 자의 여유가 내 언어에 묻어났다.

11시 30분, 국민건강보험 목포지사를 찾았다. 퇴직 후의 의료보험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내의 의료보험에 내가 포함돼야 한다. 직원은 매우 친절했다. 신분증을 요구하더니 컴퓨터에서 뭔가를 검색했다. 아직 퇴직 처리가 안돼 있다고 했다. 퇴직 처리가 됐다는 통보를 받은 후에, 의료보험 주당사자(아내)가 가족관계증명서를 직접 제출하면 된다고 했다. 나의 이름이 누군가에게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오후 1시가 훨씬 넘어서 점심을 먹었다. 여유로울 줄만 알았던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일부러 여유를 찾아 낮잠을 청했다. 잠깐의 오수를 즐기는 것은 꽤 오랜 습관이다. 몸과 정신이 개운하다.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나만의 영어교재를 펼쳤다. 회화 중심의 영문을 노트 한 페이지 정도 옮겨 적고 입으로는 반복해 읽는다. 반드시 뭘 하겠다는 목표는 없다. 뭔가를 하고 있다는 마음의 위안이다.  

퇴근 시간 이후의 하는 일은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저녁을 먹었다. 아침 식사와 같은 방법이니 설거지할 그릇의 수가 훨씬 늘었다. 그렇지만 불편이 없다. 시간의 여유가 모든 것을 감싸고 있다.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산책을 나섰다. 제법 어둑해진 산책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나의 퇴직과 관계없이 세상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내가 있다. 

저녁 10시. 컴퓨터를 열어 인터넷 속의 세상을 만났다.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로 뉴스가 분분하다. 작금의 교육현실이 안타깝다. 결국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교원들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으로 집약되는 것 같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마음으로 응원하는 일 이외에는 별로 없다. 9월 4일엔 주변에서 진행되는 집회에는 꼭 참석해 보리라 다짐한다. 

내일은 인근의 어울림도서관을 가야겠다. 걸어서 5분 거리다. 지난해 11월에 개관한 목포시립도서관이다. “나의 퇴직 후를 위해 목포시에서 준비해 주었다.”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실없이 던진 농담이다.  ‘날마다 도서관에 나타나는 이상한 할아버지’. 퇴직 후의 내 모습이다. 단순한 변화와 기대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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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별시 2023-09-05 09:45:10
자연인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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