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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혁이의 속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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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혁이의 속마음
  • 박주정
  • 승인 2023.04.2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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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정의 콩나물 교육(17)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출하는 아이들을 모아 광주변두리에 폐가를 개조해서 집을 만들고 공동학습장이라고 명명하고 그들과 함께 살면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야기이다. 공동학습장에는 토끼, 닭, 개, 칠면조 등을 정서순화를 위해 키우면서 살았다.

가끔 잔인하게 동물을 장난삼아 괴롭히고 학대한 아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토끼를 발로차고 스트레스를 주어서 토끼를 죽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래도 아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친구들도 그 아이를 싫어했는데 어느 날 밥 먹는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동혁이는 어디 갔어? 왜 밥 먹으러 안 오지?” “선생님, 살금살금 가볼까요?” “어디를?” “저기 창고 밑에 조용히 가보게요.” 우리는 함께 창고 쪽으로 갔다.

“선생님, 저것 보세요. 진짜 웃기지 않아요? 저 애 토끼를 발로차고 스트레스 주어 죽인놈이에요. 그런데 무덤에 십자가까지 만들고 자기 토끼 죽었다고 울고 있잖아요. 웃기잖아요.”

동혁이었다. 그는 토끼를 죽인 아이였는데, 자기가 좋아하던 토끼가 장마철에 죽자 땅을 파서 죽은 토끼를 묻고는 젓가락으로 십자가를 만들고 그 앞에서 울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안다. 우리에게 거칠게 대하는 것은 자기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보여주는 일면이었다.

약하면 짓밟히니까 강하게 보이기 위해 더 과장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무라지 않았다. 땅속에 토끼를 묻고, 그 무덤에 십자가를 꽂으며 우는 저 모습이 저 아이의 진짜 모습이다. 난 그걸 믿었다. 믿기 때문에 그 아이가 밉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모른 척해줘. 부끄러워할 수도 있잖아.” “선생님, 뭘 모른 척해요.” “이야기해야죠. 멋있네. 그런데 새끼가 왜 우냐고.” 우리는 그날 이후로 동혁이의 그날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늘 아이들을 바라본다. 대들고, 악쓰고, 욕하는 모습 그 안에 숨어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다른 것은 백 번이고 포기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어른들의 시각은 정말 반대한다. 눈빛만 보고도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공동학습장에서 아이들은 매일 반딧불을 만들었다.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담배를 끊지 못했다. 밤이 되면 넓은 농장 이곳저곳을 몰려다니며 담배를 피웠다. 그게 무리 지어 군무하는 반딧불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아이들을 방치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고 돌아다니면 “야, 반딧불이 너무 멋있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킬킬대면서 아이들이 차츰 숨어서 피우기 시작했다. 이 방법이 통했는지 나중에는 많이들 끊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담배를 끊지 못하는 나를 나무랐다.

“이제 선생님도 담배 끊으셔야지요.”“그래, 너희들이 속 안 썩이면 끊을 수 있지···.”

강변 푸른 마당에서 우리는 별을 보며, 달을 보며 살았다. 저마다 슬프고 고단한 사연은 달랐지만 같은 팬티를 입고 서로를 의지했다. 부족하지만 화목한 집안의 아이들처럼 그렇게 안아주고 감싸주고 싶었다. 지금은 전국 각지에 사는 제자들이 여전히 당시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단다.

“어린 시절 의지할 곳이 없어, 갈 집이 없어서 야간경비를 서며 추위와 배고픔에 떨었다고 하셨던, 선생님의 그 시절을 나는 기억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운도 좋았다. 그 말썽꾸러기 707명을 10년간 데리고 살면서 크게 다치거나 큰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하늘도 무심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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