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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교권에는 날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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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교권에는 날개가 없다"
  • 양선례
  • 승인 2023.04.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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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례∥동강초 교장

수능 9등급으로 합격했다느니, 교대 열세 곳 중 열한 곳이 사실상 미달이라는 등의 자극적인 제목이 보인다. 한때는 높은 합격선으로 상위 5% 이내의 학생이 들어갈 수 있다는 교육대학의 인기도 서서히 저물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출생률이 낮아져서 생긴 학령 인구 감소 때문이다.

2021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272만 명인 초등학생이 7년 후인 2030년에는 159만 명으로 가파르게 줄어든단다. 거기다가 과거에 비해 교권이 크게 추락했고, 동시에 업무 부담은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다 보니 원하던 교단에 들어와서도 부적응으로 떠나는 이도 있다.

경력이 30년이 넘은 나 같은 사람이야 노년에 연금이라도 있어 버틸 수 있지만 바뀐 연금법으로 신규 교사는 국민연금과 같거나 조금 더 낮은 금액을 받을 거란다.

나는 25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담임을 맡았다. 사고나 병으로 아이들과 중간에 이별하는 일 없이 다음 학년으로 아이들을 올려 보냈다. 그게 최고의 행운이다. 학기가 시작되면 학급 운영의 규칙과 담임의 교육 철학을 담은 안내장을 발송했다. 아이들과도 무리 없이 잘 지냈다. 혹여 학부모가 불편해하거나 오해하게 될 것 같으면 미리 전화로 양해를 구했다.

호미로 할 수 있는 걸 가래로 막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했다. 무엇보다 담임의 역할과 행동이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어서 그들에게 죄짓는 교사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심전심이어서 학부모와도 원만하게 지냈다.

그런데 딱 한 번, 다툰 일이 있었다. 3학년 담임을 하면서 학년과 특활 부장을 겸할 때였다. 한 학년이 여섯 반 이상이 되어야 학년 부장을 따로 두는데 우리는 다섯 반이었다. 2학기가 되자, 동학년 선생님 한 분이 병휴직을 냈다. 그런데 하필 일 년 내내 단 하나 맡은 업무가 학예 발표회 추진이었다. 기간제 교사가 왔으나 그 업무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게 걱정돼 휴직을 고민하던 선배를 보다 못해 내가 해 주마 하던 참이었다.

지금껏 시청각실에서 학예회를 치뤘기에 큰 부담이 없을 줄 알았다. 큰 계획만 세우고 학년별로 날짜를 정해 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해에는 개교 4년 만에 강당이 완공되었다. 강당 개소식과 노인 위안잔치까지 겸한단다. 판이 커졌다고 이제 와서 발을 뺄 수도 없었다.

계획을 세우고, 조명과 음향, 무대 구성을 맡은 이벤트 업체를 예약했다. 각 학년에서 요구하는 의상과 준비물도 하나하나 점검했다. 춤과 노래를 적절히 안배하여 프로그램 순서도 정했다. 여기저기 초청장도 보냈다. 이제 시나리오를 적어 사회 맡은 아이들 교육하는 일만 남았다. 오전엔 우리 반 아이들 가르치고, 오후엔 학예 발표회 준비하느라고 하루하루가 정신이 없었다.

교감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민원인이 왔으니 학년실에서 맞으란다. 6학년 학부모다. 우리 반도 아니고 다른 학년 학부모가 내게 무슨 볼일이 있을까 의아했다. 자신의 딸이 1학기 전교학생회 회장인데 왜 2부 사회자로 배정했느냐고 따졌다. 1부 사회를 보려고 1학기 회장이 되었단다. 그러니 바꾸어 달라고 생떼를 썼다.

2학기에 있는 행사니까 당연히 그 학기의 임원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게 맞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설득하려다 보니 이런저런 예를 들었다. 선출직으로 임명된 국회의원도 그 기간이 끝나면 시민으로 돌아간다, 2학기 행사이니 사회자가 안 되어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는 둥.

며칠이 지났다. 교감 선생님이 교장실로 내려오라고 했다. 내용 증명으로 미옥이 엄마가 보낸 우편물이 와 있단다. 그게 뭐냐고 물었다. 우체국에서 우편물의 내용을 서면으로 증명해 주는 제도로 발신자가 우편물의 기재 내용을 소송상의 증거 자료로 삼으려고 할 때 이용된다. 사전에는 이렇게 설명돼 있었다.

녹음을 했는지 주고받은 말이 그 학부모 처지에서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거기에다 다리를 꼬았다는 등의 행동까지 묘사돼 있었다. 2부 사회자라고 적힌 식순을 보고 실망했다는 내용이 담긴 미옥이의 일기가 무려 여섯 장이나 첨부돼 있었다. 자신에게 모욕감을 준 내가 아주 나쁜 선생으로 그려져 있었다.

화가 났다. 나와 어느 정도 신뢰감이 쌓인 우리 반 학부모가 그랬다면 덜 억울했을 것이다. 길 가던 사람에게 뺨 맞은 기분이었다. 누구를 마음에 두고 특혜를 주려고 꼼수를 부린 것도 아닌데 이렇게 일을 키울 일인가. 교장, 교감 선생님도 어이없는 표정이었지만 그분의 성향을 아는지라 대놓고 편을 들지도 못했다. 다른 사람의 일을 대신 하는 걸 알기에 내게도 미안해했다. 그러면서도 저쪽에서 사과를 요구하니 전화 한 통 하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어떤 사람인지 알아 봤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니까. 그런데 정보를 캐 온 지인의 말이 가관이다. 시내 에어로빅 강사라면서 아예 상대조차 하지 말란다. 교장 선생님과 담판을 지었다.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사과는 하되 사회자는 내 계획대로 하겠다, 학교가 말발 센 학부모의 입맛대로 움직이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결국 나는 저자세로 전화했고, 2부 사회는 미옥이가 보았다. 학예 발표회는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끝났다. 마음 고생한 걸 아는 동료들이 위로했다.

교직 20년을 마무리할 즈음에 일어난 이 일은 내게도 생채기를 남겼다. 잘잘못을 떠나 구설수에 오르는 일 자체가 그동안 익숙한 물에서 너무 오래 있었기에 생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고향을 떠나, 근무한 적 없는 도시의 작은 학교로 옮겼다. 자칫 송사로까지 이어질 뻔한 그 우편물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이미 15년이나 지났지만 교직 생활의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학부모와 담임 간에 다툼이 생기면 학교는 언제나 을이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올해 2월에 명예퇴직한 지인은 1학년을 담임했다. 의자에 앉지 않고 누워서 생활하는 아이가 세 명이나 되었다. 아이가 산만한 걸 견딜 수 없어서 학부모에게 이야기하니 통솔하지 못하는 담임의 능력을 의심하더란다.

부모의 동의를 얻어 수업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보여 주니 그때서야 병원에 가더란다. 처음에는 조심하던 아이가 나중에는 잊어버리고 평소처럼 행동해서 얻은 결과였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은 에이디에이치디(ADHD). 담임을 믿지 못해서 아이의 치료 시기만 늦어졌을 뿐이다. 몸도 마음도 지친 지인은 결국 학교를 떠났다.

학부모와 학생의 권리가 커지면서 교사는 점차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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