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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언어고 추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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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언어고 추상화다"
  • 정재영
  • 승인 2023.04.2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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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수석교사·교육학 박사

수학교사로 35여년을 교실에서 문제풀이에 몰입하고 있을 때 수학이라는 학문은 아이들에게는 ‘왜 배우는가’에 대한 질문이 많았으며 20여년 전 여름에 있었던 일로 기억되는 일화가 있다. 

지금은 작고한 친구이지만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 닭백숙을 먹으러 가자해서 따라나섰더니 그곳에는 50대 초 중반의 어른들이 계셨다.

친구가 나를 학교선생이라고 소개하자 작가로 소개받은 한분이 ‘무슨 과목을 가르치시냐고 물으시기에 ’수학을 가르칩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눈이 둥그레지시며 다시 묻는다. ‘수학이 무엇입니까?’ 나는 ‘수학은 언어입니다’ 라고 대답했고, 또 다른 한분은 화가이셨는데 그 분은 묻지도 않았지만 그분을 보고 ‘수학은 추상화이기도합니다’라고 대답했더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연륜이 있으셔서 내가 말하고자하는 의도를 이해하시는 듯했다. 

수학하는 자들은 왠지 특별해 보이며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실이며 그만큼 수학이라는 학문이 학교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실 이것도 역사적으로 수학을 하는 사람들은 중세 때부터 백인 남성 그리고 중산층 위주의 학문 이였으니 자연스레 특별한 학문으로 취급받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암울한 수학사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수학에서 교과서로 대표되는 교육과정은 틀에 짜여진 암기와 문제풀이 기능 훈련위주가 대부분이다. 요즘 시대에 말하는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며 실제로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학수학능력 시험의 출제된 문제들이 사고력 측정이라기보다는 속도전이기에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한 문제라도 더 풀어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수학은 언어발달과 함께 해온 학문으로 공리로 출발하여 학문의 체계를 이루어온 것으로 나는 수학이 우리의 삶속에서 태어난 경험적 철학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물론 선험적 이성주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수학의 발달과정에서 아시아·아프리카의 수학을 포함한 수학 문화의 전이가 인정되지 않았고 절대주의 철학이 우세하던 유럽중심의 학문체계가 확립되면서 경험보다는 이성이 중시되면서 수학교육의 방향은 ‘땅에서 시작’한 것이기보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학문으로서 자리매김이 시작되었다. 

사회 훈련과정의 장소로서 학교 수학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목적의식도 없이 수학을 접하게 되고 초등과정에서 조작 활동과 경험 위주의 수학교육이 이루어져 있지만 중·고등으로 들어서면 함축적 의미가 큰 기호화된 표현들, 그리고 추상화로 이루어진 수학을 다루게 된다. 그것도 교과 구조와 인간 사고의 본질 사이의 상호작용이 부족한 상황에서 교실 수학은 자칫 상처 주는 학문으로 전락하기 쉬우며 실제로 ‘수포자(수학포기자)’라는 용어까지 세간에 유행하고 있다. 

자연과학 철학으로서 수학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수학을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어디쯤 자리하고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며 인문학에 더 가까운 학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수학은 특별한 소수를 위한 수학보다는 모두를 위한 수학교육을 희망한다. 이런 이유로 중 고등학교에서 수학교육은 좀더 쉬워져야하며 교육과정의 대폭적 수정을 요구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정의된 그대로 대학공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는데 그쳐야하며 학생의 변별도를 측정하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출제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저자로서는 출제진에서는 소위 ‘킬러 문항(killer Quiz)에 집중한다. 최상위층 아이들 변별을 위해 만들어야하는 문항들이다. 용어자체도 문제이지만 학생의 능력을 단순히 정답에 도달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는 온전히 결과중심주의의 관점이다. 또한 그러한 문항 자체가 교실수학에서 다루는 교과서형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수학교육은 평가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학문 자체로서 즐길 수 있는 교양과목으로서 재탄생되어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기본적 도구로서의 학문으로 자리매김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학의 발생적 측면의 수학을 교실수업에 도입하여 기원전 2-3000년경에 인류가 고민했던 지점을 오늘날의 아이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중∙고등 수학교과서의 대부분이 유럽중심의 수학사 기술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시아·아프리카 수학문화는 다루어져 있지 않다. 세계 인류의 발생과정에서 수학은 함께 해왔으나 수학 발달사의 한 부분만을 뚝 떼어서 교과서에 실은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현재의 수학교육은 문제에 기반을 둔 학습 분위기를 형성하여 문제 해결력을 향상 시키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로 평가받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교수학습 방법면에서 접근해보면 기능 훈련주의이며 수학적 연결성 측면에서 수학적 아이디어는 경험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통적 교과서에서 제시한 방법에서 벗어나 삶과의 연결이 강할수록 학생들의 이해의 폭은 깊어지고 확장성은 더 커진다고 볼 수가 있다. 역사 발생적 관점의 수학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수학사를 교수학습방법에 적극적으로 도입해야한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으나 학교교육의 몸통인 교육과정을 평가가 흔들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는 실천력에 있어서는 단순한 에피소드일 수밖에 없다. 더욱더 중요한 문제점은 편중된 수학사 서술에 큰 문제가 있다. 마틴 버날은 그의 저서 블랙 아테나의 반론에서 자연자학 분야의 기술을 유럽중심으로 편중된 학문체계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블랙아테나 반론을 읽었을 때 생소한 어휘와 역사적 사실 그리고 시대 상황에 따른 정치 문화의 이데올로기적 철학과 관점에 따라 학문의 가치가 때론 왜곡과 편견으로 얼마든지 기술되고 정치적 목적에 따라 부당하게 근거자료로써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수학은 백인 남성 그리고 중상류층만이 하는 특별한 학문으로 자리한 것도 그리고 중요한 여과기(critical filter) 작용하는 수학의 특별한 사회적 기능으로 사회 특정 계층의 이익을 일정부분 도모하고 사회 문화적 우월성을 조장한 그 역사적 뿌리를 인지한 후, 교사로 태어나 정치적 중립성이 강한 학문이며 변하지 않을 진리집합체로 여겨 엄밀한 논증으로 이루어진 언어로 아이들과 함께한 많은 시간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무너져 내리게 한 순간 이였다. 

인종주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19·20세기의 ‘아리안모델’을 지지하는 서양학자들에 의하여 인종적 문화적 편견으로 서술된 학문적 가치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아프리카적 수학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였고 그것은 결국 오늘날 교실수업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우고 알고 있었던 수학사의 편견과 오류에 대해서 자연과학자가 아닌 정치학자이며 언어학자 그리고 사회학자가 객관적 자료와 유물 그리고 사료들을 중심으로 동지중해에서 일어났던 수학문화의 전이 관점에서 지금까지 전통적 수학사에 문제점을 언어의 이동과 유입과정 그리고 시대적 상황 등을 고려하여 유럽중심의 수학사 기술에 반론을 제기하였다. 

세계적으로 학계에서는 발칵 뒤집어졌으며 특히 인종주의와 민족 우월주의가 그 근간이라는 사실까지 이르러서는 유럽중심주의자들과 아프리카 중심주의자들 사이에 날선 비판과 논쟁이 세계적으로 들끓게 된다. 수학사에 대한 전문 학자가 아닌 버날은 수학사관련 전문 학자들의 비평에 블랙아테나 반론을 통해서 그들의 날선 비평에 엄연히 그리고 명백히 존재하는 자료들을 제시하며 역사 발생적 수학사의 오류들을 지적했다.

그가 유대계 영국인이라는 사실에서 자신의 뿌리에 관심을 두어 책을 집필할 동기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블랙 아테나를 집필한 정치적 목적은, ‘유럽의 문화적 오만을 줄이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그에게 남다른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담은 것은 '블랙 아테나1,2', '블랙 아테나의 반론'등을 읽고 그의 주장들이 퍼즐을 맞추듯이 행간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부터이다. 특히, '블랙 아테나의 반론'의 5부 과학(Science)부분에서 '블랙 아테나의 비평'의 1/4을 쓴 Palter와의 논쟁을 통해서이다.

Bernal은 정치학자이자 언어학자 그리고 사회학자이지만 고대 과학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Palter와의 논쟁은 흥미를 넘어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수학과 관련된 전문 학자가 아니면서도 고증된 다양한 역사적 사료들을 기반으로 수많은 학자들의 비평에 일일이 답하는 학자적 열정, 그리고 그가 책을 읽은 독자들-특히 전문 수학자들-에게 전문 수학자들이 이 논쟁에 관심을 갖고 전문적인 수학자의 눈으로 수학사를 살펴보고 마무리 짓기를 원하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당연히 이 논쟁에 대해 세계적으로 많은 수학자들이 관심을 가졌으나 세계적으로 수학계를 이끌고 있는 주류계층의 이해관계와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대부분의 수학자들에 의해서 그다지 큰 이슈가 되지 못했으나 전통 수학사에 관심을 가진 몇몇 저명한 학자들에 의해 고대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아프리카 수학사에 관심을 갖고 관련된 연구논문들이 발표되기 시작하였다.

많은 연구 결과물들이 발표되면서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이슬람권의 수학문화를 재평가 하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대 이집트의 수학문화는 일반 대중은 물론 교실수업까지 연결되지는 않았고 여전히 문화의 전이를 외면하고 유럽중심주의자들의 왜곡과 편견이 교과서뿐만 아니라 일반 교양수학도서들까지 근거가 미약한 전승에 불과한 이야기들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교사로 태어나 '블랙 아테나1,2', '블랙 아테나의 반론'을 만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으며 10여년간 박사학위 논문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고 학문적 용어로 어려운 내용을 일반 대중들에게 교양도서로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다시 엮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다시 원론적인 화두로 돌아가서 다시 묻는다. ‘왜 수학을 배우는가?’ 수학은 정의(Definition)로 시작해서 정의(Definition)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 정의(Definition)는 정의(Justice)로 와야 한다. 학문은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순간 지역 간 갈등으로 이어지며 우리가 알던 저명한 학자들에 의해 문제의 본질이 호도 되었으며 결국 학문은 없고 힘의 논리에 의해 비극적인 세계사를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 

이 책을 접하면서 교사로 태어난 나를 자극하여 교실수업의 올바른 방향과 철학의 정립이라는 거대한 화두에 한 방울의 마중물이라도 되어 보자는 의지를 갖게 만든 것은 버날의 다음의 글이었다. “큰 붓으로 칠해진 큰 규모의 역사적 틀은 조심스러운 전문분야 학자들을 자극하여 일관성 있는 생각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러나 일관성 있는 생각의 구축과 전문분야 학자들의 비판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없다면, 박학다식한 학자들은 이론적인 옅은 공기 속으로 너무나도 쉽게 이륙할 것이다” 나에게 인상적인 이글은 수학교육자로서 사회적 정의, 교실수업의 인종적 차별에 따른 문제점, 민속수학 그리고 세계 시민교육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비판적 수학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서는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수학적 업적을 중심으로 재조명해보고 인종주의와 민족우월주의로 대변되는 유럽중심의 학문체계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나의 주장을 담았다. 다소 표현이 거칠거나 추정이 과한 부분이 있을 수있지만 먼 오래된 시대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생길 수 있는 추측일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 발굴된 유적과 그리고 학계에서 인정된 자료를 중심으로 최대한 근거를 마련했다는 사실을 이 자리를 통해 밝힌다. 

부족한 글이지만 나의 이 글이 우리나라 수학교육의 방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교사로 태어난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덧붙여, 본 이 책에 인용된 모든 자료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몇 개의 주제에 대해서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Bernal이 ‘거대한 화폭에 큰 붓으로 그림을 그리려 할 때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결과’로 표현 하였듯이 이 책에 언급된 주제들이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상태로 제공되어 새로운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풀도록 모든 문제들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토마스 쿤(Thomas Samuel Kuhn)의 주장을 지지한다. 이 책을 시작 하면서 평소 좋아하는 글귀 하나로 저의 부족한 식견과 내용을 대신하고자한다.

‘하늘 아래 온전히 내 것이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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