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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철이에게는 스프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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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철이에게는 스프링이 있었다"
  • 박주정
  • 승인 2023.04.16 0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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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정의 콩나물 교육(16)

교도소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교도소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는 처음이었다. 교육청이나, 학교, 시민단체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을 많이 받지만 교도소는 처음이라 좀 의아하게 생각했다.

‘교도소에 가서 그들에게 무엇을 강의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반 학교에서 하던 주제로 똑같이 강의할 수는 없었다. 고심을 하다가 내가 10년간 학교부적응학생과 함께 공동학습장에서 살아가면서 훌륭하게 성장한 학생들의 모습과 그들이 꿈을 키워가는 내용으로 준비했다.

강의 장소는 철문을 두 개나 지나서 있었다. 푸른 죄수복에 머리를 빡빡 깎은 채 1백여 명 정도의 수감자들이 앉아 있었다. 양쪽에 두 명씩 네 명의 교도관이 총을 메고 서 있었다. 일반 학교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한참 강의를 하고 있는데 한 명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당신 돈 얼마 받고 그 일을 했습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 뭐 하려고 그런 일 했습니까?” 하고 되물었다. “나는 교사로서 부적응 학생들을 구제해야겠다는 순수한 마음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수감자가 일어서더니 “그런 싸가지 없는 놈들은 교도소로 보내버리지 뭐하러 공부를 시켰냐”고 했다. 강의 분위기가 산만해졌다. 10분이 지나고부터는 차분하게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내가 의도하는 뜻에 동조하면서 조금씩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몸이 좀 약해 보인 한 수감자는 강의를 들으면서 가끔 울었다. 강의가 끝나고 막 나오려 하는데 그 수감자가 와서는 “선생님, 저 인철이라고 합니다. 꼭 기억해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울던 친구가 자신이 인철이라고 했다. 이후 편지가 한 통 왔다. 교도소에서 온 편지였다. 직감적으로 인철이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씨가 또박또박 예쁘게 쓰여 있었다. 사연은 이랬다.

“저의 학력은 초등학교 5학년 중퇴입니다. 저는 폭력조직 행동대장으로 있다가 폭력사건으로 복역 중입니다.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서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제게 필요한 책을 좀 보내주십시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배우고 싶다는 열의가 참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퇴근 후 서점에 들러 중학교 과정에 필요한 책과 참고서 그리고 만화책, 소설책을 구입해 보내주었다. 인철이한테서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가 왔다.

그 후 3년 동안 인철이에게 책을 보내주었다. 당시 인철이는 4년형을 받아 복역하고 있었다. 형기를 마치고는 소식이 없었다.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십수 년이 지난 어느 날 편지가 왔다. 내가 장학사 시절에 만났으니까 국장이 되기까지 상당한 세월이 흐른 뒤였다. 편지를 받아보니 글씨체가 인철이였다. 편지를 개봉하기가 두려웠다. 어떤 내용일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교도소를 전전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까 하는 마음에 한동안 편지를 들고만 있었다.

“선생님, 제가 외제차 부속품을 조립하는 업체 대표가 되었습니다. 종업원도 20명이 넘게 일하고 있습니다.” 몹시 반가운 소식이었다. ‘사람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하루 종일 내 일처럼 기뻤다.

인철이는 4년 복역을 마치고 출소했다. 서울 등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로변에 세워진 외제차를 훔쳐서 달아났다. 주인의 신고로 잡혔다. 다시 교도소에서 2년을 복역하고 나왔다. 그러고는 그 자동차 주인에게 복수하려고 찾아갔다. 목에 칼을 대는 순간 주인이 말했다.

“나는 당신의 기술을 사고 싶소. 어떻게 자동차 문을 열었소? 너무 신기합니다.” 자동차 주인은 외제차 부품대리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스프링으로 자동차 문을 열었소.” 깜짝 놀란 주인은 인철이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의했다. 외제차는 그 차 키가 아니면 절대로 열 수 없는 특수 장치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인철이는 스프링 하나로 열었으니 주인이 깜짝 놀랄 수밖에. 인철이는 자동차에 관한 천재적인 머리를 갖고 있던 청년이었다.

인철이는 부속품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신제품을 개발해서 그 가게가 승승장구했다. 종업원 숫자가 늘어나고 외제차 부품 쪽에서는 잘나가는 선두업체로 발전했다. 사장도 성실하게 일하는 인철이를 믿었다.

사장은 그 당시 나이가 많았는데 딸이 하나 있었다. 딸은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인철이의 학력은 중학교 2학년 정도였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사장은 돌아가시고 마침내 인철이는 그 회사 대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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