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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허벅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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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허벅지 상처
  • 박주정
  • 승인 2023.04.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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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정의 콩나물 교실(15)

신실한 교인이셨던 어머니는 몇 해 전에 돌아가셨다.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곁에 계실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49세에 떠나보내고 시골에서 혼자 사셨다. 빈농의 집안에서 홀로 농사를 지어가며 억척같이 8남매를 키우느라 손에 지문이 없다.

내가 장학사 시절의 일이다. 어느 해 여름방학 때쯤이다. 교육청에서 피서 이야기를 하다가 고향인 고흥 바닷가도 거론되었다.

내 차에 장학관님 부부를 모시고 세 사람이 고향집으로 갔다. 바닷가 마을에 있는 우리 집은 맨 위쪽의 허름한 초가집이었다. 어머니께 내려간다는 말도 없이 불쑥 찾아갔다. 외롭게 혼자 사시다가 자식이 찾아갔으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장학관님을 소개했더니,

“이 자식아, 이렇게 귀중한 분들을 모시고 오려면 사전에 귀띔이나 좀 하지.” 옛날 말에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 그만큼 힘들고 귀찮다는 말이다.

어머니는 내게 귓속말로 “손님들 모시고 바닷가에 가서 구경을 하고 있어라, 내가 얼른 바다에 갔다 올게.”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바로 바다에 나갈 채비를 하셨다. 옷을 갈아입고, 장화를 신고, 옆에 바구니를 들고, 물질을 하러 가셨다.

우리도 집에 있기가 답답해서 바닷가로 나갔다. 바닷가에 갔더니, 저쪽 갯벌에서 열심히 뭔가를 캐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우리 일행은 소나무 그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쪽 갯벌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우리 쪽 바위 밑에 오셔서 뭔가를 잡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바위 밑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한 곳에 너무 오래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 우리 여기 있어요. 이제 그만하고 나오셔요.” 어머니가 갯벌에서 나오셨다. 바구니에는 낙지, 소라, 문어까지 가득이었다. 장학관 사모님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감탄했다. “와 어머니,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뭐라고 말씀을 안 하셨다. 차 뒤에 어머니를 태우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장학관님이 급히 말했다.“박 장학사, 잠깐 잠깐, 차 스톱.” 차를 세우고 뒤로 가봤더니 차 바닥에 붉은 피가 흥건했고 어머니 옷에서는 계속 피가 흘러나왔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쓰러지셨다. 급히 읍내 병원으로 갔다.

어머니는 전복을 채취하다가 날카로운 바위에 허벅지 살이 한 뺌도 넘게 찢어지는 상처를 입으셨다. 오랫동안 바위를 붙잡고 있을 때 그때 아마 사고가 났던 모양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과다출혈로 위험할 뻔했다.”고 간호사가 말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후 장학관님 내외분은 꼬박 3일 동안을 병원에서 함께 간호하면서 지냈다. 피서철에 피서는 저 멀리 피해 가버린 것이다. 사모님의 지극한 정성으로 어머니는 퇴원하셨다.

장학관님은 우리 집을 다녀온 후로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셨다. ‘훌륭한 어머니 밑에 훌륭한 자식이 있다’는 말씀을 해주시면서 윗분으로서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물질을 하시다가 그 많은 피를 흘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자식을 위한 자내 엄마사랑을 잊지말고 살아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지금 내곁에는 엄마가 없다.

[광주 진남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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