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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다, 잘가시라" 아이 바보 짱 장석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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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다, 잘가시라" 아이 바보 짱 장석웅
  • 김두헌 기자
  • 승인 2022.06.1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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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간 현장 교육 적폐 청산하고 신선한 혁신의 바람 일으켜
‘교육’ 구호로 치장한 치열한 ‘정치싸움’에 속수무책으로 패배
변화와 혁신으로 미래교육 주춧돌 놓은 ‘성공한 교육감’ 평가 기대

“죄송합니다. 전적으로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전남교육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대의와 충정으로 함께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상심과 상처받은 자존심을 어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6월 1일 치러진 전남교육감 선거에서 재선의 문턱을 넘지 못한 장석웅 교육감이 SNS를 통해 도민들과 자신의 지지자들에 남긴 메시지의 일부다. 권력의 세계는 냉혹하다. 그가 떠난 후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은 짐을 싸고 '늘공(늘 공무원)'들은 새로운 권력실세들을 찾기 위해 오감을 동원하느라 분주하다. 

특히 이번 선거는 그동안 전남교육에 대한 도민들의 일관된 지지와 호의적 평가를 감안하면 이변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장석웅 교육감 본인은 물론 그를 지지하는 도민들의 실망과 충격은 치명적이었고, 교육청 안팎의 분위기는 지금까지 종잡을 수 없이 술렁거리고 있다. 

이번 선거는 ‘돌아가신 진짜 DJ가 산 장석웅을 이겼다'는 원초적인 이유부터  ‘교육구호로 위장한 치열한 정치싸움에 아마추어식 대응', '진보세력 위주의 선대위 구성', '집토끼 놔두고 산토끼 잡으로 다니는 꼴', '교장 홀대론', '비서실장의 일선 교장들과의 소통 통제', '권력 재창출을 위한 절실함 부족', '믿었던 수많은 인물들의 배신', '현수막' 등 선거에 지면 늘 그렇듯 패배 이유만해도 천가지 만가지가 넘는다.  

4년 전, 평교사 출신으로 전남교육의 수장으로 당선된 그는 무서운 기세로 현장의 교육 적폐를 청산하고 신선한 혁신의 바람을 일으켰고 낙후된 변방의 전남교육을 미래 교육의 중심으로 도약시켰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복병이 등장했다. 도내 곳곳에 전남교육을 비방하는 특정 단체 명의의 현수막들이 게시되면서, 다가올 선거가 혼탁하고 과열된 양상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결과적으로 파괴력은 엄청났지만 장석웅 교육감은 ‘진실은 끝내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컸던 때문일까,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정치판’으로 전락하던 선거국면에서 술책보다는 ‘정책대결’이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이는 그동안 인정받은 전남교육 성과들에 대해 유권자들이 온전히 기억하고 지지해주리라 믿음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믿었던 결과는 달랐다. 흔히 아마추어리즘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성과는 성과였고 선거는 선거였다. 교육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이번 선거는 한마디로 ‘교육’ 구호로 치장한 치열한 ‘정치싸움’이었다. 그는 특히 권력을 차지하려는 절실함과 준비된 조직력, 대중을 파고드는 전술면에서 무지했다. 

‘4년의 성공한 교육감’
단지 선거 결과만 두고 볼 때, 그는 ‘재선에 실패한 교육감’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들 상당수는 그가 ‘4년의 임기 연장’에 실패한 것이지, 교육감으로서 4년을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재선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지나간 4년만큼은 변화와 혁신으로 미래교육의 주춧돌을 놓은 ‘성공한 교육감’으로 부르는데 인색하지 않은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장석웅 교육감이 취임 당시 전남교육의 상황은 누가 봐도 녹록치 않았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열악함” 그 자체였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취약계층 학생과 기초·기본학력 부진 학생 비율, 심각한 교육격차, 위기에 처한 농산어촌 작은 학교 문제, 빈약한 지방 교육재정 등 산적한 문제를 전남교육은 안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기의 절반이 넘도록 계속된 코로나 위기가 온전한 교육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는 “농부는 밭은 탓하지 않는다”는 일념으로 현장을 찾아 뛰며 “오직 변화와 혁신만이 위기에 처한 전남교육의 살길”이라 보고 희망을 일궈냈다. 전국 최초의 고교 무상급식 완성을 비롯해 유아교육비 확대 지원, 학교 밖 청소년 지원 확대 등 교육복지의 선제적 확대는 “학교는 세상에서 가장 평등하고, 누구에게나 배움은 제공돼야 한다”는 장석웅의 신념에서 비롯된 성과들이다.

진정한 교육복지는 학습복지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판단 아래 기초학력 향상에 주력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읍 지역 학급당 학생 수를 25명으로 감축해 개별 맞춤지도 여건을 조성했고, 기초학력전담교사제를 전국 최초로 도입했다. 권역별 진학지원센터 구축 등 맞춤형 진로·진학지도를 강화해 학교를 꿈이 살아 숨 쉬는 배움터로 만들었다. 

전국 최초로 22개 시·군에 학교지원센터를 구축해 학교 행정업무를 대폭 덜어내고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 기본운영비를 10% 증액해 자율적이고 탄력적인 학교 운영을 이끌었고, 권위와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적인 조직문화를 확산시켰다. 전국 최초로 학생의회를 제도화하고 학교자치조례를 제정해 ‘모두가 주인이 되는 학교자치’를 실현했으며, 모든 시군까지 교육참여위원회를 구성해 도민자치의 길을 열었다.

학령인구 감소와 4차 산업혁명,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선제적 대비를 위해 그는 2021년을 ‘전남 미래교육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2030 전남미래교육발전 종합방안’을 수립 추진해왔다. 폐교 위기에 처한 농산어촌 학교들을 살리기 위해 시작한 미래형 통합운영학교는 전남의 새로운 대안적 학교 모델로 주목받는가 하면, 전남의 작은 학교가 가진 장점을 활용해 도시 학생을 유치하는 농산어촌유학프로그램은 ‘새롭고 대안적인 교육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인간’ 장석웅을 위한 변(辨)
“이 모든 성과는 교육 가족과 도민 여러분이 이룬 것입니다.”

그는 성과 앞에서 늘 겸손함을 잊지 않았고, 도민들의 지지를 오히려 채찍으로 여기며 그때마다 신발끈을 더욱 동여매곤 했다. 그가 존경했던 故 오종렬 선생은 생전에 장석웅을 가리켜 “민주교육의 넓은 터에서 혼자 튀지 않고 외장치지 않고 여럿이 함께 행렬을 조율하며 끊임없이 전진하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특유의 외유내강 성품을 지닌 교육감 장석웅은 틈만 나면 교직원들을 치켜세우며 전남교육 변화와 혁신의 힘을 결집했다. 교육청 안팎에서 ‘샤이 장석웅’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그는 수줍음이 많은 것 같지만, 뚝심은 ‘불도저’로 통했다. 특히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그의 우둔할 정도의 정직함은 직원들을 긴장케 했고, 전남교육에 대한 도민들의 신뢰도를 높여줬다.

하지만 누군들 결점이 없으랴. 장석웅 또한 보는 각도에 따라 얼마든지 결함을 안고 있었다. ‘교장을 안 해 본 교육감’, ‘전교조 출신 교육감’ 등의 이유로 일부 관리자들이나 단체들로부터 편견과 의심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학생 중심 교육행정이라는 원칙과 소신에 충실하다 보니 초기에는 의회나 언론과의 관계도 매끄럽지 못했다.  

수많은 직종의 교육공무직을 비롯한 교직원 단체들의 분출하는 요구와 노사갈등 또한 전교조 위원장 출신인 장교육감의 발목을 잡았다. 평교사이자 교육운동가에서 일도의 교육 수장인 교육감이 된 후, 그의 조망과 실천의 결은 이전과 달라져야 했지만, 동지들은 장 교육감의 유연함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때론 현장의 후배들과 일부 전교조 조합원들로부터 따가운 질책과 비판도 감내해야 했다.

교육감의 중책을 일임한 도민들의 준엄한 명령을 생각할 때, 그가 어깨에 짊어진 전남교육이라는 무게는 이전보다 몇십 배, 몇백 배로 컸을 것임은 당연지사다.  올해 초 출판한 그의 저서 '스스로 길이 되는 사람들'에서 그는 ‘민주진보교육감’이라는 막중한 사명감이 부여한 시대적 요구와 무게감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핵심을 틀어쥐고 분투하지 않으면, 첩첩이 둘러싸인 현안문제들로 인해 칼날은 무디어지고 본질적인 문제의식도 희박해질까 봐 두렵기도 했습니다. 처음의 다짐과 달리 또 하나의 그저 그런 교육감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지, 위기감 속에서 매일매일 칼날 위에 서 있는 느낌으로 보낼 때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그는 편 가르기 하거나 실익이 없는 노선 경쟁보다는 모두를 아우르며 힘을 결집하는 포용적 혁신을 견지하며 전남교육의 변화와 발전을 추동해냈다.

4년전의 장석웅 전남교육감.
4년전의 장석웅 전남교육감.

잘 가시라 ‘아이 바보 짱 장석웅'

"그동안 과분한 사랑을 베풀어주신 도민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이제 밖에서 전남교육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주민직선 3기 전남교육 수장으로서 임기를 마치며 그가 남긴 말이다.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그에게 많은 사람으로부터 안타까움과 위로의 메시지가 SNS 등에 쏟아졌다. 

-“계시는 동안 전남교육의 성장과 진보에 큰일을 하셨습니다. 그동안의 노력과 정성은 교육현장에서 빛나고 있습니다”(해남 학부모)

-“학교 현장에 자율사업비 예산을 많이 내려주셔서 필요한 것 마련하고 많이 바뀌었는데 계속 이어지지 못해 아쉽습니다. 장석웅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옳은 길 응원하며 함께 하겠습니다”(목포 교직원)

선거판에서 보여준 그의 올곧은 품격과 교육에 대한 열정, 아이들 앞에서는 한없이 ‘바보’가 될 만큼, 학생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걱정하던 그의 인간미 넘치는 삶이 엿보이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지난 4년의 성과는 눈부셨고, 장석웅 교육감님은 위대하셨습니다”(화순 군민)

-“정치판이 된 선거과정에서 품격있게 잘 싸우셨습니다. 그동안 보여주신 교육에 대한 열정과 치열함, 진정성은 전남교육 역사에 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누구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존경합니다”(광양 교직원)

-“당신은 바보였습니다. 평생을 오직 정의와 양심에 충실하며 살아왔던 당신의 삶의 준칙은 반칙을 보듬지 못했습니다”(무안 군민)

-“교육행정가로서는 강단지고 빈틈없는 당신이었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바보’라고 부를만큼 천사가 되는 당신이었습니다. 오직 아이들만 바라보며 뛰어온 당신이었기에 ‘아이 바보 짱’이라는 칭호가 어울릴 것 같아요”(여수 교사)

그가 못다 이루었던 꿈들이 계속되라는 바람과 함께 다시 일어서라는 당부도 이어졌다.

-“정권이 바뀌고, 교육감이 바뀌었어도 당신이 꿈꾸었던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은 전남교육은 계속되어야 합니다”(강진 학부모)

-“늘 가까이에서 그림자로 동행하렵니다. 광야는 거치른 것이 기본이려니 더욱 정진해 전남교육을 향한 삶의 여정 가꾸어가십시오. 가슴을 할퀴고 지나간 광풍은 반드시 역사적 단두대 앞에 서리니 부디 강건 하십시오. 삶은 다시 살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전남도민)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

남악 청사를 뒤로 하고 떠나가는 장석웅 교육감에게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산다는 것은 더 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나희덕의 시를 들려주고 싶다. 그동안 가파른 비탈길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생각해온 당신에게 운명(運命)은 좀 더 깊이 들어가도록 인도했을지 모른다.

높이에 대한 선망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실패자일지 몰라도, 지금 당신은 삶의 깊이속으로 자유롭게 회귀하고 있다. 당신은 이제 일상의 하루하루가 높은 산을 오르는 일보다 힘들고 가파른 고비로 여겨지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아직도 꿈꿀 만한 일들과 해 볼 만한 일들이 많을 것이다. 다시 현장에서 멋지게 웅비할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열렬히 응원하겠다.

절망 앞에서 정직해질 때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맞이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하고 떠난 그가 전남교육의 참된 시작을 열었음을 이제 남은 자들이 증명해 보이길 기대한다.  평소 그가 좋아했던 시인 박노해의 시 한 편으로 ‘바보 짱’ 장석웅을 떠나 보낸다.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봄이 걸어 나온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박노해, ‘길이 끝나면’) 

"수고하셨습니다. 잘 가시라. 바보 장석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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