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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을 만든 14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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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을 만든 14권의 책
  • 장옥순
  • 승인 2022.06.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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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순∥'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외 다수 저자
청춘의 독서/유시민 지음/웅진지식하우스/14,800원

녹슬어가는 나의 바다를 다시 두드리기 위해 이 책을 찾았다. 그동안 소화시키기 좋은 말랑한 책들만 찾아 읽고 있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거나 슬픔을 몰고오는 책은 일부러 피했다. 이제는 버려야만 하는 책들이 너무 많은 내 책장 속에서 언제나 손짓을 멈추지 않던 이 책을 읽을 수 있을만큼 건강을 회복한 덕분이다.

과거와 미래는 나의 영역이 아니니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다시 책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이른 아침 학교 도서관의 문을 열고 책을 읽으며 아이들을 맞이하던 풍경 속으로 돌아가기 위해 최대한 이른 아침에 책상 앞에 앉는다. 

선물처럼 주어진 오늘 하루를 여는 시작으로 책을 연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생각들을 좇아가면 나의 무뎌진 일상을 벼리는 칼날 하나쯤은 얻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으로 십 여년 전 읽었던 책을 다시 찾았다. '청춘의 독서' 라는 제목이 주는 신선함은 이 책을 읽으면 사라진 청춘이 되돌아 올 것만 같다. 아니,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는 이미 청춘이다. 사람은 자기암시만으로도 뇌세포를 속일 수 있으니.

이 책의 무거운 주제들은 '노년의 독서'라고 표현해야 맞을 듯싶다. 한 세상을, 풍파를 겪어낸 사람, 시련을 담담히 이겨낸 사람에게 더 어울릴 것 같은 책이기도 하다. 세상은 결코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음을, 선한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도 아님을 젊은이들이 미리 알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편법으로 부를 이루고 명예와 권력까지 거머쥔 사람들이 부르짖는 공정과 상식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아는 일은 인생의 나침반이 필요한 젊은이에겐 좌절만을 안겨줄 것이므로.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성공한 사람은 뭘 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사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것을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가난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은 더욱 처참하다. 게을러서 가난하다고,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니 자신을 원망하라고, 그렇게 태어나게 한 부모를 원망하라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소리치는 세상이다. 그러니 세상은 늘 제자리가 아닐까. 이런 세상의 부조리를 책이라는 무대에 올려놓고 난도질한 작가들이 피로 쓴 언어들이 슬픈 5월의 한가운데에서 손짓한다.

아끼는 책이 있다는 것, 다시 읽어도 새로움을 안겨주는 책을 곁에 두고 사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마치 언제 찾아도 인연의 끈이 연결되어 있는 그리운 사람처럼. 세월의 더께를 이겨낸 묵직한 작가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결코 떠나지 않은 현실 속 유명인으로 내 곁에 서 있는 듯하다. 책을 읽을 수 있는 행복을 누리며 아프게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로하라고 내게 이른다. 

그 행복을 유지하려면 일단 휴대폰부터 끄는 일이 먼저다. 독서를 방해하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잡아먹는 블랙홀이기도 하니. 한 번 켜면 별 볼 거리도 없으면서 분노지수를 높이는 뉴스부터 클릭하게 되고, 나중에는 유튜브 음악까지 듣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휴대폰의 마력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은 끄는 수밖에 없다.

특히 눈을 나빠지게 하는 주범이니 더욱 멀리해야 할 물건이다. 예전에는 집 전화만으로도 다들 잘 살았건만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끄고 살아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아무일도 일어나자 않음을 깨닫게 된다. 특히 한가해진다. 휴대폰을 끄면 마치 한가한 시골길을 걷는 것처럼 평온해진다. 아무런 소음도 없는 도서관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고요해서 좋다. 책에 몰입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건 당연하다.

광고성 전화나 즐겨찾기를 해놓은 채널에서 보내는 문자 메시지,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시달릴 필요도 없으니 평온을 유지하게 되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이제는 '자연으로 돌아가라' 대신에 '휴대폰이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라' 이 말이 좋을 듯싶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세상을 발견한 셈이다. 특히 책을 읽을 때는 무조건 꺼둔다. 생각을 방해하지도 않고 책에 몰입하는 시간을 길게 해주니 얼마나 좋은가! 

이제는 나의 주변인들이 휴대폰은 끄고 사는 나를 걱정하는 단계를 넘어서 다행이다.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라는 걸 인정해준다. 내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니 미련 없이 끄고 산다. 정말 급한 소식이라면 가족에게 오는 전화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된다.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사안이라면 어떻게든 전해진다. 만나야 할 사람은 꼭 만나지듯. '자유인'이 되는 데는 약간의 용기만 있어도 된다. 세상을 향한 안테나를 끄는 것만으로도 정신 건강이 좋아진다. 휴대폰에 끄달려 살지 않는 것만으로도 바람의 속도로 내달리는 나의 생체시계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 

작가 유시민의 책은 읽을 때마다 공부하는 학생의 자세가 되게 하는 힘이 있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정연한 논리 체계는 학습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작가를 연구한 품부한 배경지식, 작품을 분석하는 해박한 논리에 문학 수업을 받고 가르침을 받는 느낌으로 읽곤 한다. 특히 자신이 그 책들을 읽게 된 배경 설명이 진솔하며 사회적 배경까지 밑그림으로 보여줘서 더욱 그러하다. 거의 십 여년 전에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사이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이 책은 정치인 유시민에서 야인으로 돌아간 시점에서 쓴 것으로 보인다. 첫 문장이 "길을 잃었다"로 시작하는 대목에선 서늘한 서글픔이 몰려왔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을 잃고 석 달 가까이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했던 나의 슬픔이 가슴을 후볐기 때문이다. 강진의 어느 작은 빌라에 살던 때였다. 몇 날 며칠 조기를 달고 아픔을 삭이던 풍경이 어제 일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아이들과 나는 교실에서 종이 태극기를 만들어 교실에 조기를 꽂고 슬픈 애도시를 지으며 함께 울었다. 1학년 아이들이라 나보다 더 순수한 감성이라서 매우 조심스럽게 다가갔던 그날의 아픔들이 묻어나오는 첫 문장!

작가 유시민은 길을 잃었기에 길을 만들기 위해 피눈물을 찍어내며 이 책을 썼으리라. 무엇인가에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으리라. 세상에 도가 없으면 은둔하는 방법 밖에 없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세상과 담을 쌓으며 울분을 삭이며 책을 읽었을 것이고 방향타를 놓친 허망함을 글이라는 배에 싣고 떠난 이를 그리워하며 애도하는 방법으로 아픔을 승화시킨 절절함이 행간마다 숨어든 책이다. 마치 사마천이 억울함을 이기고 죽음의 강을 건너면서 위대한 책 <사기>를 편찬하듯. 

정치를 떠났지만 아직도 유시민은 매우 정치적인 인물이다. 가만히 있고 싶은 그를 결코 가만두지 않는 세상과 사람들 덕분이다. 그만큼 시대를 보는 눈이 날카롭고 변화를 향한 갈망이, 분노를 이겨낸 따스함이 아프게 사는 사람들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작가 유시민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 분명하다. 

이 책은 모두 14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 유시민의 생각을 만들고 사상의 밭을 일구게 한 책으로 구성했다. <죄와 벌>을 시작으로 <전환시대의 논리>,<공산당 선언>, <대위의 딸>,<맹자>, <광장>, <사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종의 기원>, <유한계급론>, < 진보와 빈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역사란 무엇인가> 등이다.

어느 한 꼭지도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없다. 지식인의 고뇌를 바탕에 깔고 유시민 자신을 성찰하고 질문하며 진실하지도 공정하지도 못한 세상의 아픔, 절대 빈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박해와 불평등마저 운명으로 치부하고 비열한 세상을 눈물과 한숨으로 살아낸 소설 속 인물들은 바로 현실 속의 인간군상이었다. 이미 읽었던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무겁고 심각한 주제에 눌려 읽는내내 함께 우울하고 슬펐다.

진정한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써야 한다는 명제를 실천한 작가들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작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억울하고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인공의 행위로 대변하며 세상을 고발한 작가들의 고뇌가 전해져서 아프고 힘들었다. 바로 작가자신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쓰지 않고는 살아낼 기력이 없었던, 쓰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이었던 작가들의 내면을 작품 해설보다 더 심도 있게 파헤친 작가 유시민의 지식창고가 한없이 부러웠다. 얼마나 책을 많이, 다양하게, 깊고 넓게 섭렵했을까!

14권의 책을 소개한 소제목에 스스로 답을 한 뒤, 이 책을 읽는다면 훨씬 깊이 있는 독서가 될 것 같아 소개한다. 다분히 철학적인 질문들이다. 세상을 가볍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연대의식을 갖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비대면 세상일수록 더 연대하지 않으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 책을 읽는 젊은이라면 이 책은 필독도서 목록에 꼭 넣기를 부탁한다. 생각이라는 걸 하고 사는 사람, 마음의 문을 열어둔 사람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특히, 세상을 위해 일하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읽으시라!

1.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2.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3. 청춘을 뒤흔든 혁명의 매력 4. 불평등은 불가피한 자연법칙인가 5.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6.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만나다 7. 어떤 곳에도 속할 수 없는 개인의 욕망 8. 권력투쟁의 빛과 그림자 9. 슬픔도 힘이 될까 10.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가 11. 우리는 왜 부자가 되려 하는가 12. 문명이 발전해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13. 내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14. 역사의 진보를 믿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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