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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에도 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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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에도 격이 있다"
  • 장옥순
  • 승인 2022.02.11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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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순∥찰스 핸디의 '정신의 빈곤'을 읽고
정신의 빈곤/찰스 핸디/노혜숙 옮김/21세기 북스/15,000원
정신의 빈곤/찰스 핸디/노혜숙 옮김
/21세기 북스/15,000원

아프리카에는 두 가지 차원의 굶주림이 있다고들 한다. 저차원의 굶주림과 고차원의 굶주림이 그것이다. 저차원의 굶주림이란 삶을 유지하기 위한 것들, 즉 우리에게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위해 지불하는 돈제 대한 것이다. 고차원의 굶주림이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즉 삶의 목적에 관한 것이다." 찰스 핸디의 『정신의 빈곤』22쪽)

정신이 가난한가?

'굶주림'이란 단어가 풍기는 것은 다분히 매슬로우의 1차원적 욕구인 생리적 욕구에 해당한다. 가난했던 시절, 배고픔을 해결하고자 학교도 가지 못하고 일터로 내몰린 우리 시대의 초상이기도 하다. 유력한 대선주자의 한 사람도 저차원의 굴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8년 동안 산업현장에서 고군분투 했다고 하니, 그 시절 대부분의 어른들의 삶이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배를 곯는 일이 일상이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렇다면 고차원의 굶주림이란 정신적이거나 내면의 욕구, 삶에 대한 철학적 물음이다. 이분법적으로 무 자르듯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배가 고파도 삶의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저차원의 굶주림을 해결하고도 더 이상 진보하거나 혁신하지 못하는 일차원적 인간도 수두룩하지 않은가.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이나 노동단체의 최저임금제,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나 복지제도 등은 대부분 가장 기본적인 저차원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정책들이다. 세상이 살기 좋아졌다고 하지만 절대빈곤층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인간의 이기심을 자극하는 자본주의의 생태는 부의 양극화라는 그늘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저차원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복지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나라에서는 최소한 나락으로 떨어져 회생불능한 극빈층은 제도적으로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최고의 담세율(48% 이상)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기본생활비를 제공하고 대학까지 무료로 공부하도록 정책적으로 실시 중이다.

높은 담세율을 감수하면서도 청렴을 기반으로 하는 정부와 신뢰가 바탕이 되어 이뤄낸 성과이기도 하다. 나의 세금이 공정하고 청렴하게 쓰일 거라는 믿음, 특별 우대를 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적 평등의 실현(대통령이나 청소노동자의 휴가 일수가 같다거나 고위직이라 하여 비서를 두거나 자가용을 제공하지 않는 등)

얀테의 법칙이 만든 사회

무엇보다 사회적 분위기나 문화가 기본적 인권의식을 높인 것도 한몫 한다. 어느 누구도 특별한 사람이 없다는 의식, 즉 얀테의 법칙이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다. 북유럽 문화에는 얀테의 법칙(Jante Law)이 있다. 북유럽 국가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를 비롯하여 덴마크와 아이슬란드가 있는데 이 얀테의 법칙이 북유럽 사람들의 신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얀테의 법칙’은 덴마크 출신의 노르웨이의 작가 샌더모세의 책 '도망자,지나온 발자취를 다시 밟다’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그의 고향에 가상의 마을을 설정하여 ‘얀테’라고 이름 짓고 주민들이 준수해야 할 10개의 법칙을 만든다. 이 10개의 법칙의 핵심은 개인적인 성공보다는 평등과 공존을 중요시하고 늘 겸손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얀테 법칙의 핵심은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하거나 낫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 우리 문화와는 정반대가 아닌가! 우리는 내 자식이 남들보다 특별하기를 바라고 남과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문화, 경쟁하여 이기기 위하여 부당한 방법이나 편법도 불사하며 모함하고 헐뜯는 문화가 보편화 되지 않았을까. 내가 남보다 특별하다는 의식은 오만함이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고도 뭐가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니 갈등이 생긴다.

얀테의 법칙 10가지

1,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2.당신이 남들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3.당신이 남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4.당신이 남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5.당신이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6.당신이 남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7.당신이 모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8.남들을 비웃지 마라

9.누군가 당신을 걱정할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10.남들에게 뭐든 가르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북유럽 4개국을 다녀온 적이 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름답고 수려한 자연환경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문화였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헤치거나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으면서도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더 많아 보이는 시내 풍경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바짝 깎아버린 민머리의 젊은이들은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탈모나 염색 대신 스트레스 받지 않고 편하게 사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난독증 주제 해결에 도움을 받고자 찾아간 학교는 전교생이 126명인 작은 학교였다. 난독증 학생 1명을 찾아내기 위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전문가 상담을 거쳐 대책을 세운다고 힜다. 그 한 명을 위해 전문교사가 대기 중인 학교라니! 그 학생만을 위한 컴퓨터와 오디오 시설까지. 그들의 문화는 뛰어난 학생에게 투자하는 대신 학습부진이나 지진학생에게 더 심혈을 기울인다고 했다. 결과적 평등을 실천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억울한 학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국가정책에 따라 단 한 명의 학생도 놓치지 않으려는 그들의 교육정책에 감동했다.

초등학교 교실을 찾아 갔을 때는 그 소박함에 더욱 놀랐다. 우리나라의 교실보다 훨씬 허름해서 놀랐고 학교 주변은 시멘트 보다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이 대부분이어서 더욱 놀랐다. 특히 학교장도 평교사처럼 수업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누가 관리자인지 따로 소개도 하지 않았다.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를 뿐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협의회에서도 볼 수 있었다.

시가지에는 수백 년 된 건물이 즐비했고 일상용품 상점이나 옷가게는 대부분 작고 소박했다. 그들은 새롭게 건물을 올리거나 넓히는 대신 고쳐 쓰며 있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의상 역시 검소하고 담백했다. 화려하게 차려 입거나 한껏 멋을 부린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주어진 환경이 자신들 세대만을 위한 게 아니라 물려줘야 할 유산이라는 인식, 검박한 호텔 시설, 다소 부족하고 불편해 보이는 서비스 시설이 이해되었다. 호텔이어도 그 흔한 믹스커피나 생수를 구하기 어려웠다. 외식하는 장소도 드물었다. 그들은 퇴근 후 가족과 함깨 시간을 보내는 '휘게'(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보내는 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뜻하는 말)문화가 자리잡아서인지 저녁 회식이나 외식은 거의 없다.

거리는 조용했고 가로수는 아름다웠으며 한가한 시골 정경이 펼쳐지던 모습은 1인 당 국민소득이 높음에도 상대적으로 소박하게 사는 그들만의 의식 수준이 궁금해지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존 벌었다 하면 좋은 집부터 사고 비싼 차를 몰고 멀쩡한 물건도 다 버리고 새로 입주한 아파트도 싹 다 고치는 게 다반사가 아닌가.

그들은 고쳐 쓰는 게 일상이라 상점의 내부조차 허름했다. 우리는 가게 주인이 바뀌면 리모델링 해서 싹 다 바꾸고 버리느라 돈 낭비에 자원 낭비가 얼마나 심한가 돌아보면 생각의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는 내면보다 외면을 중시하고 보여지는 것에 민감한 우리 문화의 그늘이다. 그것은 곧 물질지상주의, 외모지상주의로 연결된다.

조지 오웰, '돈'을 말하다

일찌기 조지 오웰은 이러한 물질만능주의를 풍자한 소설을 썼는데, 오늘날의 사회풍조를 예견하고 있어서 매우 놀랍다. 조지 오웰이 1936년에 발표한 런던의 빈곤을 그린 소설 Keep the Aspidistra Ftying(엽란의 비상)에서 주인공인 고든 콤스톡은 성경의 고린도 전서 13장의 사랑에 대한 구절을 그 시대에 빗대어 인용했다.

그는 '사랑' 대신 '돈'으로 다음과 같이 바꾸었다. 그러고보니 세상은 달라지거나 진보하는 게 아님에 한숨이 나온다.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풍자했음에도 반박하거나 변명조차 어렵다. 온갖 사회문제의 저변에 깔린 '돈'에 대한 탁월한 해석이니. 돈 때문에 돈 사람이 많은 세상이니 돈은 '돈'이 분명하다. 누가 명명한 단어인지 대단한 혜안이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돈'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돈'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돈',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돈'입니다. (찰스 핸디의 『정신의 빈곤』23쪽)

나는 저차원의 굶주림이 덜 채워진, 적당히 배고픈 상태에서 울림을 주는 문장을 만나는 순간, 하고 싶은 말이 술술 써질 때 고차원의 굶주림이 해결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조용한 음악과 곁에서 가르릉거리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자판 소리를 즐기는 순간이 나만의 '휘게'인 셈이다. 그러니 행복은 일상에 있다. 특별한 순간보다는.

아프리카의 굶주림에 대한 정의를 소개 한 찰스 핸디의 책 <정신의 빈곤>속에서 만난, 조지 오웰의 돈에 대한 신랄한 풍자는 뇌폭풍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얀테의 법칙도 오늘 새벽에 만난 대어가 분명하다. 아직도 배움에 대한 의지가 살아 있어서 고차원의 굶주림을 느끼는 나는 특별한 복을 타고난 게 분명한 게 아닐까. 미안하지만 이런 생각은 얀테의 법칙에 위배된다고!

새삼스럽게 위대한 작가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음에 감사한다. 얀테의 법칙을 책 속에 만들어서 전반적인 사회 현상을 주도하며 세상을 변화시키고 인권의식을 뿌리내리게 한 작가에게 감사한다. 소리 없이 오래도록 세상의 물줄기를 돌려놓는 위대한 작가가 이 나라에도 넘쳐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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