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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칸사스에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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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칸사스에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얻다
  • 최대욱
  • 승인 2018.07.1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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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욱∥前 한국교총부회장·순천팔마중 교감

피라칸사스, 한겨울에도 붉은색 열매로 정열적 모습을 품어내 내게 무척 인상 깊은 나무였다. 그 나무는 분재로 널리 애용되고 있는데 붉은 열매뿐 아니라 곡선이 중첩된 아름다운 뿌리를 보는 용도로도 사랑받고 있다.

언젠가 좋은 날 지인이 선물한 만수산 드렁칡 닮은 피라칸사스 뿌리 분재에 오늘도 정성을 들이며 상념에 잠긴다.   우리의 역사 속 라이벌 중 정몽주와 이방원이 있다. 단심가와 하여가의 주인공들로 그들이 최후의 만남에서 읊었다는 시조는 오늘날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백골이 진토 되어 넋마저 없어지더라도 일편단심 지조를 지키겠다는 절개와 현실을 인정하며 서로 어울려 살아가자는 제안 사이의 처절한 긴장감이 지금까지도 느껴지는 듯하다. 동 시대에 도저히 양립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비극적 사건을 동반한 채 각자의 길을 갔다. 

600여년이 지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가치들이 수직적 위계성의 형태보다 수평적 상충성의 형태를 띠면서 존재한다. 복잡다단해 진 수평적 가치체계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집단들의 생존권적 각축전은 사회의 각 분야에서 연쇄 충돌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주장과 변호를 위해 동원하는 언어적 유희들은 가히 만수산 드렁 칡을 능가한다. 

만수산 드렁 칡은 이제 더 이상 변절로만 해석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절차적 민주주의를 준수하며 생존해 가야하는 다양한 집단들의 끈질긴 생명력의 모습으로 재해석 되어야 한다. 누구든 타인의 주장을 비판하고 자기를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행위들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수많은 반복 절차를 거치게 되며 그 결과는 민주주의의 성장으로 수렴한다. 가치관의 판단 기준이 옳고 그름에서 다름으로 전환된 오늘날 이러한 현상은 더욱 그러하다.  

다름의 세계에서 옳고 그름은 없다. 따라서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있을 수 없다. 승자가 되었다고 자만해서도 안 되고, 패자가 되었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그 현상들은 순간에 지나갈 허상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는가?

우리 모두가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타인을 존중하면서 얽히고 설켜 함께 세상을 엮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날마다 사무실의 피라칸사스를 바라보고 만수산 드렁칡을 생각하면서 여말선초의 비극적 사건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을 가져올 和而不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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