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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대학입시의 진실’, 저렴한 문제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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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대학입시의 진실’, 저렴한 문제의식
  • 서천석
  • 승인 2017.06.0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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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행복한아이연구소 대표·사교육걱정없는세상 이사

EBS 다큐프라임 '대학입시의 진실'. TV를 보며 문제의식의 저렴함에 한숨이 나왔다. 소득 격차가 세대를 넘어 이어질 뿐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이런 현상은 꼭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1990년대 이후 전 세계가 동시에 경험하는 문제다.

이를 뒤집기 위해 미국만 해도 저소득층 가족의 중산층 거주지로의 이주 지원, 적극적 부모 교육, 저소득층 지역에의 과감한 교육 투자 등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제법 과감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그 정도 처방으로 뒤집힐 수 없어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EBS 다큐 팀은 공정한 입시로 개천에서 용만 나게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나 보다. '개천에서 용이 나도록 하자.' 이런 문제의식부터 촌스럽다. 그럼 용이 안 된 개천의 미꾸라지나 매기, 붕어와 피래미는 어떻게 하나? 그들은 용 몇 마리가 자기가 사는 개천에서 나왔으니 만족하고 살아야 하나? 혹시 개천에서 용만 나오게 하면 개천 전체가 긍정적으로 발전했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그렇지도 않다.

지방의 낮은 계층에서 태어나 계층 상승에 운 좋게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출생 지역을 균형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들이 노력했다면 지금 이렇게 불균형이 심하다고 방송을 할 필요가 없다. 계층 간, 지역 간 균형 발전이 이미 이뤄졌을 테니까.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개천에서 몇 마리 용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개천을 더 이상 개천에 머무르지 않게 만들기 위해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가이고, 용만 압도적으로 잘 사는 사회를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할 지에 대한 고민이다.

방송에서 가장 자주 나온 이야기 중 하나가 교육의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교육의 역할에서 '신분 상승의 수단'이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걸까? 신분 상승의 욕구는 교육이라기보다는 학습의 강력한 동기다. 더 잘 살기 위해 사람들은 많은 노력을 한다. 학벌이란 무형의 자산을 얻기 위해 아이들도 힘든 공부를 감내한다. 그렇지만 더 많은 교육을 받으면 신분 상승을 이루기 쉽다고 해서 신분 상승이 교육의 중요한 가치는 아니다. 교육에는 자기 고유의 역할이 있는데 EBS 다큐프라임은 우리 교육의 가장 큰 역할을 신분 상승에 두고 있나 보다.

교육을 그렇게 바라본다면 교실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며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수많은 아이들의 한숨은 느끼지 못하게 된다. 12년간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높은 점수를 받고 좋은 대학에 합격했지만 허탈감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신분을 끌어올릴 정도의 능력을 갖지 못한, 또는 노력하지 못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상실감에 시달릴지, 또 그들에게 12년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참고 견디는 시간이어야만 하는지 그들은 잘 모를 것이다. 신분을 상승시킬 정도로 공부를 잘 해낸 아이들도 묻고 또 묻는다.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무의미한 암기에 시달려야 했냐고? 이들은 한 문제도 틀리지 않기 위해 투자한 엄청난 시간이 아까워 자기보다 점수를 못 받은 아이들을 영원히 무시하고 싶어 한다. 뒤틀린 세계관을 갖기 쉽다. 그런데도 EBS 다큐프라임 팀은 오래 전부터 뒤틀려온 교육 시스템이 오로지 신분 상승의 사다리 역할만 잘 해낸다면 괜찮다고 면죄부를 주려나보다. 모든 아이들에게 수업이, 교실이 의미 있게 되려면 교육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기 없다.

입시의 공정성에 대한 EBS의 문제 제기는 타당하다. 입시라는 중요한 경험에서 아이들이 불공정을 느낀다면 그 상처는 오래 가기 마련이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교육 주체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입시의 공정성을 확보하려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EBS 다큐프라임 팀의 문제의식은 거기서 엉뚱하게 한발 더 내딛는다. 학생부 종합 전형이 불공정의 주된 원인이기에 수능 위주의 전형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암시한다. 그렇게 불공정을 줄여야 격차 사회로의 진행을 막을 수 있고 사회의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고 역설한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던, 지금보다는 공정했던 입시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친다. 그런데 정말 수능 위주로 입시가 진행되면 교육 격차의 확대, 계층 간 불평등의 확대가 멈출 수 있을까? 왜 작은 공정성 이슈를 좀 더 큰 사회 정의 이슈와 교묘하게 섞어 엄청나게 정의로운 방향인 듯 포장하려고 할까? 정시가 확대되든, 수시가 확대되든 그것만으로는 격차 사회로의 진행은 멈추지 않는다. 엘리트 중심의 시스템은 마찬가지다.

공정하게 단일 시험 점수로 주로 선발하는 영재고 입시에서도 강남 3구와 소득계층 상위 집안의 학생들의 비율이 높다. 사교육을 충분히 받아야만 영재학교 입학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선발이 공정하다고 해서 기회의 평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게 진실이 아닌가? 이제 좀 제대로 된 문제 제기를 해보자. 교육을 살리고 불평등을 줄일 방법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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