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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일신 선생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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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일신 선생을 기리며
  • 송기원
  • 승인 2014.12.0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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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풍양초등학교 교장

오는 2015년 1월 18일은 고흥이 낳은 천재 동요작가이자 항일운동가인 은성(隱星) 목일신(睦一信) 선생이 태어난 지 102주년이 되는 날이다. 또 1986년 10월 12일은 73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지 29년이 되는 날이다.

탄신 100주년이 되던 2013년, 전남대학교 이동순 교수님은 '목일신 전집'을 엮어 세상에 내놓았다. ‘작품집을 남기지 않은 탓에 그의 문학적 성과는 지금까지 사장되고 잊혀졌는데 그의 작품들을 수습해 내놓았다’고 밝히고 있다.

흩어진 자료들을 모아 전집을 만든 이 교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면서 두 번이나 읽었다. 지난 여름, 현재 고흥읍에 살고 있는 학부모 박효선 씨를 데리고 목일신 선생의 생가를 찾아 나섰다. 선생이 태어나신 행정리 425번지나 80~90년 전에 실제로 살으셨을 생가 서문리 106번지 주소가 다르기도 했지만 두 곳 다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이집 저집을 기웃거리다 70세가 넘은 이실형 님을 만나 물어봐도, 근처에 살고 계신 4촌 동생 목원삼 님께 여쭤봐도 알 수 없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큰딸 목혜정 님과 통화해 도로명 주소 ‘옥하여산길 6-3’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하고 찾아보았다. 좁은 골목 어귀에서 옥하여산길 6-3을 찾을 수 있었다. 

생가복원이나 문학관 건립을 하면 좋겠지만 우선 최소한 생가터만이라도 ‘여기가 목일신 선생님 생가터입네’ 하는 팻말을 세워 놓아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금산에는 프로레슬러 김일 님의 체육관, 박지성 공설운동장, 고흥종합문화회관에는 동초 김연수실, 천경자 전시실이 있는데. 세월이 지나면 기억 속에 더 깊이 묻혀버릴 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목일신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살으셨던 경기도 부천에는(지금도 사모님이 살고 계심)선생님을 기리기 위하여 거주지 주변에 일신초등학교, 일신중학교가 있고, 부천중앙공원에 시비가, 생전에 살았던 거주지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평생을 교육자로 살았던 그가 부천 시민이었음을 영원히 기리기 위한 부천시의 정책으로 보인다. 왕복 8차선 도로 이름도 ‘일신로’로 하겠다고 요청했으나 생전의 목일신이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살기를 원하는 작가의 뜻을 잇기 위해 ‘일신로’로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가 지금은 거주지 근처가 일신로로 불리고 있다.

다행히 목일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흥군에서도 고흥동초등학교 교정에는 '누가누가 잠자나', 고흥종합문화회관에는 '자전거' 시비가 세워 그를 기리고 있다. 목일신 선생님은 1930년에 가장 왕성하게 동요를 쓰고 발표하셨다. 약관 17세의 나이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신춘현상에 연이어 당선되던 해이다. 발표가 확인된 동요 201편 중 무려 63편을 그 해에 쓰셨다.

그때가 전주신흥학교에 다니다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여 퇴학당하고, 고향인 고흥으로 돌아와 동요쓰기에 전념한 것으로 보인다. 고흥은 영혼의 고향으로 동요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일본에 저항한 것 같다. 선생님이 쓰신 동요 여러 편이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

목일신 선생은 나중에 시인 김소운, 이상 등과 함께 생활하고, 윤석중, 이원수, 서덕출, 강소천 등과 함께 아동문학의 형성과 발전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셨다. 그의 동요는 윤이상, 김대현, 권길상 등 당대 유명한 작곡가들이 곡을 붙여 지금까지 애창되고 있다. 

선생은 순천여중고, 목포여중을 거쳐 이화여중고와 배화여중고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셨다. 특히 목포여중 국어교사 재직시 탁구부코치로 위쌍숙 쌍둥이 자매를 국가대표로 키웠고, 배화여중고에서는 본인도 정구를 하면서 연식정구부 감독을 지내셨다.

선생은 정년퇴임 후 한국아동문학협회 부회장 등을 지내시다 갑자기 신장 기능에 이상이 생겨 예기치 않게 급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셨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선생의 무덤 위엔 단 한 번도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적이 없어 벌초하러 가면 늘 초록빛 잔디만 가지런히 돋아 있다고 혜정 씨는 들려준다.

고흥군에서는 올해 제5회 목일신 창작 동요제와 동시대회를 개최했다. 나름 성과가 컸다고 생각되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또 동요곡집을 제작해 일선학교에 보급했지만 들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학교에서는 의도적이지 않으면 동요를 듣기가 쉽지 않는 게 오늘의 학교 현실이다.

그래서 목일신 동요를 연중 들을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해 본다. 군에서 운영하는 차량이 몇 종류가 있다. 산불방지용이나, 청소미화차 등이다. 이런 차량에 목일신 선생의 동요를 몇 곡 선정해 마을을 순회할 때(1주일에 한 차례라도) 들려준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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