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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 오덕렬
  • 승인 2009.09.24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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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렬∥조선대학교 입학사정관 · 前 광주고 교장

이 형!
그날은 봄비가 내렸습니다. 세동재를 넘던 완행버스는 힘이 겨웠습니다. 벌써 40년 전, 포두동교에 부임하면서 나의 교직생활을 시작되었지요. 열두 학급짜리, 해창만 바닷물이 운동장 끝자락에 밀려드는 꿈속의 학교에서‥. 얼마 안 있어 입대를 했고, 또 복직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바람처럼 스치는 기회에 중등계로 전직을 했지요. 그동안 크고 작은 세동재를 넘고 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정년하면 무엇 할랑가?" 물어오는 친구에게 나는, "덕림동, 내 고향에 내려가 거짓말 안하는 농사나 지을라네…."

이렇게 대답하곤 합니다. 농사라 했지만 내가 말하는 농사는 주로 뙈기밭에 남새붙이를 가꾸는 일이 될 것입니다. 땅 주인이 가꾼대로 자라는 식물의 정직성을 믿는 것입니다. 거짓없는 농작물의 생명력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요새는 '정직성'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객관적 진실은 하나일텐데, 정반대의 주장을 펴는 두 얼굴을 대할 때는 숨이 막힙니다. 원로 교육자 정범모 교수는 지금 교육에서 길러야 할 역량을 창의력, 감수성, 정직성, 자제력, 개방성 이렇게 다섯 가지를 말합니다. 여기서 '정직성'을 대하고는 아이처럼 좋아했습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어서입니다. 모든 도덕에 관한 덕목의 공통분모가 정직이라 합니다. 교육혁신의 근본과제는 무엇일까요? 신뢰회복이 아닐는지요. 학교가 할 일을 스스로 정직하게 해낼 때 교육을 믿게 되겠지요. 새싹이 돋는 봄이 지나면 신록의 계절 여름이 오는 자연의 이법을 우리가 믿듯이 말입니다.

이 형!
어느 술자리에서 형도 울고 나도 울었던 적이 있지요. 형은 광주로 발령이 날 것을 굳게 믿고 이불 짐을 싸두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짐을 다시 풀었던 일을 떠올리며 울었지요. 그러나 나는 그 풀어볼 이불 짐 자체가 없었던 기억때문에 함께 울었던 것입니다.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고, 오늘이 있는 것은 '교직'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딴 생각없이 '교육'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거칠고 힘든 길이었지만 뚜벅뚜벅 정직하게 걸었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숲속에 노란 길이 두 갈래로 났는데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은 길을 택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호화로운 선택이란 생각도 듭니다. 우리 세대엔 그런 선택의 길이 거의 없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태어나도 '교육'의 길을 걷겠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정년, 앞뒤를 둘러보며 제 자리를 확인해야 할 때인가 봅니다. 산을 오를 때보다 하산할 때가 더 어렵다고들 합니다. 아름답게 하산하여 동동주 한 잔 드는 여유를 가지렵니다. 정년 뒤의 '시작'이 희망처럼 밝습니다. 대낮의 어머니는 깜감한 밤이듯 새로운 시작은 끝남에서 자라고 있으니 말입니다. 벌써 가슴이 설렙니다.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달리고 또 달려온 지나 온 세월, 달리다가 잃어버린 나를 찾는 시작이 되리라 믿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하기 전에 졸업 앨범을 못 찾아간, 이제 속이 들었을 내 반 녀석을 다시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형!
교육계에 어른이 없다며 늘 안타까워 하셨지요. 우선 변화와 미래를 생각하며 정직한 품성을 지닌 분들이 우리 교육을 빛내도록 마음을 내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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