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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도와 장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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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도와 장탕
  • 안용호
  • 승인 2010.06.23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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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호∥前 광주시교육청 장학담당 장학관

질도와 장탕은 ‘사기열전’ 제 62편 혹리열전에 나오는 12명의 혹리 중의 두 사람이다. 질도는 한나라 경제 때 사람이고, 장탕은 무제 때 사람인데 직책 때문에 비난을 받아야 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

질도는 황제에게도 바른 말을 잘할 뿐 아니라 대신들에게도 자기가 할 말을 거리낌 없이 다 하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사냥을 황제와 함께 갔다가 위기에 처한 황제를 구하였고, 이후 황제의 신임은 두터워졌다.

마침 제남군에 간씨 성을 가진 호족의 행패가 심하여 관리들이 잘 다스리지 못하자, 황제는 질도를 태수로 임명한다. 질도는 부임하자마자 일단 동네의 사정을 파악한 뒤 간씨 일가 중에서 가장 포악한 한 가족을 잡아오도록 한 후 죄를 물어 이들을 모두 사형에 처해 버렸다.

그 후로 제남군은 잘 다스려졌고, 1년쯤 지나자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주워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법이 잘 지켜졌다. 질도는 엄하기도 하고 청렴하기도 했다. 청탁을 들어 주지도 않았고, 뇌물이나 선물도 받지 않았다. 이런 점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하여 중위라는 벼슬까지 올랐을 때였다. 중위라는 자리는 중죄인을 다스리는 일을 하는 자리였는데, 임강왕이라는 황족이 소환되어 취조를 받다가 두영이라는 제후가 몰래 넣어 준 필기구로 황제에게 사죄하는 편지를 쓴 뒤 자살을 해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처벌하라는 태후의 엄명에 황제는 어쩔 수 없이 질도를 파면하고 고향으로 내려 보냈으나, 고향으로 가고 있는 질도에게 안문군 태수로 임명한다는 임명장을 준 후, 조정에 들르지 말고 임지로 가서 알아서 일을 처리하라고 당부를 하기까지 이른다. 안문군은 흉노가 자주 침략하던 곳인데 흉노는 질도의 말만 들어도 무서워하며 질도가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질도에게 앙심을 품은 태후가 계속 황제에게 질도를 처벌하라고 요구함으로써 질도는 목이 베어지고 말았다. 여기서 ‘질도는 왜 죽어야만 했는가?’ 생각하게 된다. 장탕은 무제 때의 사람으로 제후가 감옥에 갇혔을 때 그를 정성껏 도와준 인연으로 중요 관직에 오르게 되었고, 그 후로도 일을 공평하게 잘 처리하여 승진을 거듭하여 태중대부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태중대부의 자리는 여러 가지 법령을 논의하고 만드는 일을 담당하는 높은 자리였다. 이 때, 회남왕과 현신왕 등 황제의 친척들이 모반을 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황제가 연루자들 가운데 엄조와 오피라는 두 사람을 용서하여 주자고 하였으나 장탕은 철저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그들의 죄를 들어 반대하고 처벌하였다. 그 후로 황제의 신임은 더욱 두터워져 나라의 중요한 일은 모두 장탕의 뜻에 따라 처리되었다.

무제 때에는 새로 실시한 여러 정책들이 많았는데 지금과 마찬가지로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어려웠고 관리들의 횡포도 여전했다. 백성들은 살기 힘들다고 자주 소요를 일으켰는데 장탕은 법에 따라 엄하게 다스렸으나 효과는 별로 없었다. 이상하게도 장탕은 제후 관리들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비난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러던 중 문제의 무덤이 도굴되고 귀금속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장탕이 재상 청책에게 죄를 물으려 하자 재상의 부하 세 사람이 일을 꾸며 전신이라는 사람에게 장탕의 거짓 죄상을 실토케 함으로써 황제의 문책을 받게 되었다. 장탕은 결백을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장탕은 자결을 하였고 그가 죽은 후에 그 집 재산이 500금 밖에 안 된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돈도 모두 봉급이거나 임금님이 내린 하사금이라는 밝혀지면서 사건을 재조사했는데 조작임이 밝혀져 세 부하는 사형을 당했고 재상 청책은 자살을 했다. 사마천은 ‘그들의 방책은 후세 사람들을 가르쳤고 사악한 일을 금지시켰으며 비록 참혹하였지만 그 지위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라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사기에서 질도와 장탕 두 사람의 혹리를 불러 온 이유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원칙만을 강조하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작용도 생긴다는 것을 함께 생각해 보자는 의미이다. 이 세상에서 꼭 옳은 것은 하나도 없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도 알고 원칙은 지키되 여러 사정을 아울러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융통성있는 인간을 기르는 것도 교육의 큰 책무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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