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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化粧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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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化粧室)
  • 안용호
  • 승인 2010.07.29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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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호∥前 광주시교육청 장학담당 장학관

백두산에서 운이 좋아 파란 천지를 보고 기념으로 아주 작은 돌을 손에 들고 상념에 잠겨 내려오는데 가이드가 화장실에 다녀오란다. 화장실에 들른 우리는 기겁을 하고 놀랐다. 화장실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남녀 구별이 없고 칸막이도 없으며 똥과 오줌을 함께 싸도록 되어있었다.

10년 전이라 이해는 갔지만 이렇게 까지야! 들은 바로는 중국에 ‘푸세식’ 화장실이 있는 건 마오쩌둥의 영향도 있다고 한다. 그가 창사에서 혁명운동을 할 때다. 당시 그곳의 군벌 자오시헝은 눈엣가시인 마오를 제거하기 위해 야밤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그런데 마오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날 밤 마오는 어디 있었을까.

기록은 ‘전투가 끝날 때까지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고 말한다. 화장실이 중국의 공산 혁명을 구한 셈이니 그 고마운 화장실의 환골탈태를 그로서는 지지할 수 없었던지 공산혁명 완수 후 입성한 베이징의 집무실에서 좌식 변기를 보고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화장실이 그렇게 편해서 뭐해. 너무 편안하면 수정주의가 나오게 마련이야’ 이후 마오는 죽을 때까지 양변기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대륙전체가 마오의 지시를 따른 것은 물론이다.

화장실 이야기가 나왔으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어렸을 때 배가 아프면 할머니는 나를 무릎에 뉘고 배를 살살 문질러 주셨다. 그러면 배가 안 아팠다. 참 신기했다. 할머니 손은 약손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최근에 안 일이지만 배를 쓰다듬는 자체에 마사지 효과가 있기 때문이고, 할머니가 배를 쓰다듬는 행동 자체가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고 곧바로 자율신경에 좋은 영향을 미쳐 장의 움직임이 정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란다.

270종 60조 세포로 이루어진 우리 몸은 긴밀한 협조체제로 생명을 유지하고, 특히 대장은 기쁨,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에는 즉각 반응한다는 것이다. 노라운지고. 하나 더 이야기를 해 보자. 여자들은 하이힐을 왜 신고 다니는 거야? 늘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화장실 문화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중세에는 2층이나 3층에 사는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요강을 비우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길거리를 걷던 사람이 오물을 뒤집어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긴 치마를 입은 여자들이 똥오줌으로 질펀한 거리를 걸으려면 치렁치렁 내려오는 치마를 보호하기 위해 굽이 높은 덧신을 신어야만 했는데 바로 여기에서 하이힐이 탄생하게 되었단다. 남자의 망토도 그렇고. 여기서 잠간 화장실의 역사를 살펴보자. 기원전 3000년경에 세워진 인도의 모헨조다로 유적지에서 수세식 하수 시설이 발견되기는 했다. 요강은 그리스 시대에야 등장한다.

로마인들은 ‘카스트라’라고 길거리 주변에 병을 두어 여행자들이 똥오줌을 누게 했다. 대중적으로 화장실이 사용된 것은 로마시대부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백제인들이 요강을 사용했고 1400년 전의 백제 30대 왕 무왕 때도 화장실이 있었는데 수세식 변소였다. 근대로 넘어와서도 서양이나 동양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러면 왕궁에서는 어땠을까? 태양왕 루이 14세는 똥오줌을 눌 때 요강이나 의자 변기를 즐겨 사용했다. 길이가 580m 창문이 375개, 방이 2천개나 된 베르사이유 궁전에 수세식 변소는 없었다. 심각한 악취가 진동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왕의 똥을 매화라고 했고 왕의 화장실을 매화틀이라고 했다. 매화틀에는 서랍처럼 넣고 뺄 수 있는 청동기 그릇이 있었다.

이 매화그릇은 내의원으로 보내져 색깔, 모양, 두께 등이 관찰되고 임금님의 건강을 첵크했다. 그러나 서민들은 아무데고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봤다. 우리들이 어렸을 적에도 화장실 즉 측간은 들어가기 불편했다.화장지도 오랜 역사를 지녔다. 처음에는 뒤를 닦지 않았다. 나중에는 조약돌이나 건초더미 풀잎, 아마천을 사용했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신문지로 뒤를 닦았다. 최초의 화장지는 1850년 영국에서 나왔다.

오늘날 세계는 약 15억 명이 화장지를 사용한다. 수세식 화장실이 일반화된 것은 2차 세계대전 후이다. 수세식 변기는 1596년 영국의 헤링턴 경이 발명하였다. 우리나라에는 1958년 종암 아파트에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1970년대부터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화장실 문화는 걸음마 수준이었다.

고속버스 휴게소의 화장실을 보면 아주 깨끗하다. 그러나 시내로 들어와 보면 그것도 아니다. 특히 식당 주변은 엉망이다.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를 여는 세계 10대 경제대국답게 화장실 문화를 바꾸어야겠다. 1년 동안 변기로 버리는 물이 4만 9천 리터에 달한다고 한다. 세계에서 10억 명의 사람들이 물이 없어 더러운 물을 마시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화장실 물을 아끼는 교육도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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