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우물 안 개구리
상태바
우물 안 개구리
  • 안용호
  • 승인 2010.12.15 1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용호∥前 광주시교육청 장학담당 장학관

장자 추수편에 보면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가 나온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에서 온 거북이에게 우물 안을 자랑하자, 바다에서 온 거북이가 바다가 크다는 이야기, 아홉 번의 홍수에도 변하지 않고, 비가 오나 세월이 가거나 변하지 않는 바다 이야기를 덤덤히 하자 개구리가 듣고 매우 놀랐다는 이야기다.

장자는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말하는 문화 상대주의를 내비치며 그 때의 현실을 비판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동안에 폭력 국회의 모습과 최근에 일어났던 불미스러운 일들이 떠오르면서 우물 안 개구리 쪽에서 생각하는 ‘무지’의 돋보기로 일에 임하고 들여다보았더라면 훨씬 더 잘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무지’ 자체를 모르면 심각한 문제지만 말이다. 어떻든 내가 모른다는 개구리의 시각에서 몇 가지를 바라보자.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무질서 한 거야?” 그러면서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고 예의범절을 모른다고 공자님처럼 한탄들을 한다.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서로 좋을까?’ 하고 고민을 조금만 해 보면 여러 가지 방법이 떠오를 것이다.

먼저 좋게 지내려면 말로만 해서는 안 되고 가까워져야 한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친해진다는 것이다. 친해진 관계, 이 관계를 원만히 하기 위해 상대방을 의식한다면 인간은 타고난 천성에 의해 친절하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부모님에게는 효도하고, 친구는 믿음으로 사귀게 되며, 부부는 사랑하되 상대를 존중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런 관계에서는 최선을 다 하고 상대가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을 어려운 말로 ‘오륜’이라고 하고 ‘충과 서’라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의 실천은 ‘인’이라고 했다. 기독교에서는 ‘사랑’이라고 했고, 불교에서는 ‘자비’라고 달리 표현 했을 뿐이다. 결국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에 따르는 삶이 누구에게나 천성적으로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실패했다면 내 안에 네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발단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남을 몰라서 ‘무지’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며 나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개구리의 생각에서 한 치만 벗어났어도 그런 일은 안 일어나거나 적게 일어났을 것이다. 몇 가지를 더 살펴보자. ‘제국주의의 식량 무상 원조’는 식량 침략이라고 해야 옳다. 직접원조를 통해 동맹국을 얻는다는 표현을 쓴다. 문제는 남아도는 자국의 식품을 시장창출의 도구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이다. 무상 원조로 식습관이 바뀌고, 처음에는 값싼 맛에 자꾸 쓰다가 결국 자기 것을 버리고 그것에 의존하게 되며, 원조국의 잉여 농산물에 기반을 둔 집약적인 가축 산업 환경을 조성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19세기 영국이 그랬고 20세기 미국이 같은 방법을 썼다.

우리밀이 없어진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흰 밀가루에 완전히 길들여졌다가 최근 웰빙 식품의 붐을 타고 ‘우리 밀’과 ‘보리’가 되살아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우물 안 개구리 생각, 무지가 가져 온 결과라고 보여 진다.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는 무상급식에 대하여, 특히 서울 시장과 교육감의 무상급식에 대한 견해차는 일반인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두 분의 정치적 야망이 시민의 교육적 희망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다른 급한 교육적 활동을 못하게 하면서 급식 자체에 별반 큰 효과를 못 본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 같다. 무상급식은 부작용이 너무 크다. 교육 예산을 몰아주기 때문에 밥을 먹어서 배는 부를지 몰라도 교육 본질인 교육활동 즉, 실험을 한다든가, 책을 읽는 읽는다든가, 체험학습 등 예산이 들어가는 교육은 못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밥까지 학교에서 먹여줌으로써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물 안 개구리의 무지의 결과라면 대가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정몽주와 형제들 그리고 처남들까지 왕권 강화를 위해 죽인 태종, 소현세자와 손자들 그리고 며느리까지 죽인 인조, 임진왜란 때 ‘면천법’까지 써서 나라를 구한 유성룡과 이순신을 제거하려 했던 선조, 광란의 예산국회를 열어 날치기 통과를 한 후 형님 예산, 뭔 예산하면서 본분을 망각한 국회의원들, 교육을 공개만능주의로 끌고 가면서 모든 성적을 공개하고, 교원을 평가하며 교육을 실험하는 교육자 아닌 칼 쥔 사람들, 청문회만 열리면 온 가족사가 공개됨에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마이크 앞에 서는 사람들, 식품에 인체에 해가 되는 줄 알면서도 돈을 위해 부정한 짓을 하는 악덕업자들.

이 모두가 우물 안 개구리의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사람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1%도 안 되는 이런 사람들이 있고, 99%의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도 희망의 밝은 태양이 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