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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일
  • 승인 2011.04.14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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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일∥손불서초등학교 교감

고봉 기대승선생의 평전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빙월당’으로 향했습니다. 오홍진 문학평론가의 “마음 가는 곳에 길이 있다”를 펼쳐보기도 하며 숲길을 걸어 고봉의 묘를 참배했습니다. 오후 햇살에 넓은 묘역은 아늑했습니다.

다만 묘역 뒤의 울창한 숲으로 인해 주산인 백우산은 보이지 않는데다 묘역 앞으로는 소나무가 수직으로 높이 자라 구룡산 봉우리가 가려져 아쉬웠습니다. 오히려 산을 내려와 마을을 벗어나면 용모양의 구룡산과 주산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새로 나온 평전을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애일당’이란 글이 전남교육신문 12호에 실렸는데 사실은 고봉선생에 대해 아는 것이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요.

위대한 학자라도 그를 연구하고 따르는 이의 힘이 워낙 못 미치면 수준이 하락하고 그를 연구하는 이가 고명 특출하면 그의 학문사상이 본래보다 더욱 빛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500여 문장을 남겼다는 공자의 사상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모든 행동과 지성의 잣대로 인용의 원천이 되고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또한 지리산자락의 경남 산청에 들렸을 때 남명 조식 선생을 연구한 학자가 수천 명에 이르는 것을 보고 놀라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같은 시대의 퇴계 이황선생도 ‘도산서원’ 등을 통해 영남학파의 구름 같은 선비를 배출했고 오늘날까지 정신적 숭앙의 표본이 되고 있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분들 보다 많은 글을 남기고도 거의 황무지에 가까운 고봉 기대승 선생에 대한 연구와 폐허에 가깝게 방치되었던 유적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픕니다.

그나마 근래에 연구되어지는 모습을 보며 고봉 연구에 대한 학문적 생명력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지나치기 민망함으로 인해 관련 책이나마 읽어보고는 합니다. 고봉집을 넘기다 보니 등잔불이란 말이 나오네요. 깜박거리는 등불 아래서 절륜의 학문을 이룩한 선인들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져 한 구절을 인용해 봅니다.

“외로운 등잔불에 밤을 밝히고
가랑비에 창가의 꽃이 피었다.
병에 물을 담아 매화 가지를 꽂으니 꽃이 피어난다.
동백꽃을 같이 꽂으니 請絶可愛 로다.”

청절가애 (請絶可愛)를 어찌 해석할까? ‘청아하고 사랑스러워라!’ 정도로는 많이 부족하고 ‘맑게 끊기니 활짝 펴 사랑스럽다!’
고봉집 3권은 퇴계와 고봉의 서간문이 주를 이룹니다.집안일로부터 학문적 생각은 물론 정신세계에 대한 울적함마저도 모두 쓰고 답하고 있는 교유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퇴계가 낙향한 후 고봉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제자가 고향에 내려오는 길에 전해준 공의 서신을 받고서, 지난해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정황을 자세히 알고는 오랫동안 막혔던 울적한 마음이 마치 얼음이 풀리고 안개가 걷히듯 위로되었습니다. 노졸하고 미천한 나는 병으로 인하여 한가로이 지내고 있어 이는 하늘과 같은 은혜를 입었음이니 감히 늙고 혼미하다 하여 스스로를 버리는 것을 달게 여기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모쪼록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어 크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천하의 여러 서적을 경안(經眼)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더욱 알게 되었으니 매우 다행입니다. 제자가 돌아가는 편에 감사를 전하고 이만 줄입니다.”

고봉의 답입니다.

“제자가 올라온 즉시 소식을 전해주어 존체 강녕하심을 듣고는 기쁜 마음 헤아릴 수 없었으나 근심스러운 감회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저는 바로 진퇴양난의 형세에 처하여 신계(身計)가 자못 무료해 가족이 한데 모여 살 계획으로 지난달 처자를 서울로 오게 하여 거처할 집을 마련해서 조금 편하게 지낼 생각을 했는데 이달 초순에 승정원 승지가 되어 여러 날을 입직하다보니 일은 번잡하고 마음은 번거로와 괴롭고 답답한 생각 어찌할 수 없습니다. 답해주신 ‘하다말다 하는 걱정’이란 말씀이 간절한데 누(累)가 눈앞을 어지럽히고 쫒아버려도 떠나지 않고 힘써 도와주는 익우(益友)는 더욱 얻을 수 없으니 어찌하겠습니까? 밤에 후학 기대승이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등불 밑에서 간략하게 적었으니 살펴 주소서.”

성균관 대사성직의 퇴계가 서울 향교에 내린 문장도 시선을 끕니다.

“오늘의 학교는 스승이나 학생 모두 서로간의 도리를 잃었습니다. 규칙과 법령이 엄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공경하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서로를 비난하는 세태가 심합니다. 유생들은 스승 보기를 길가는 사람 보듯 하고 스승이 들어오면 수업을 받고 가르침을 청하기는 고사하고 흘겨봅니다. 스승은 헐뜯는 말에 시달려 하고픈 말을 못하고 위 아래가 속이니 함께 허물이 되고 맙니다.”

‘애일당’을 방문하면서 지난한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우리 문화를 지켜내는 일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수업장학이나 컨설팅 장학에 수석교사, 교사, 장학사, 연구사 간의 정신적 교감을 이루는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또한 뛰어난 선열들의 삶을 오늘날 시대적 상황에 맞게 해석해보고 가까이 끌어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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