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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가방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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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가방끈
  • 정영희
  • 승인 2011.10.1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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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여천초등학교 교장

‘투명가방끈’이라는 단체가 있다 해서 검색을 했더니 고등학교 재학생들로 구성된 이른바 대학 가기를 반대하는 안티대학 모임이었다. 모임 성격으로 보니 획일적이고 서열 위주의 대학생 선발 방식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대학 자체도 반대하는 학생 운동 단체다. 아직은 소수지만 뜻을 같이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니 앞으로의 활동 방향이 궁금하다.

이번에는 소수지만 대학의 서열화에 염증을 느낀 몇몇 대학생들이 학교에 자퇴원을 내고 학업을 포기했다는 소식이다. 신문을 보니 이번에는 서울대생이었다. 얼마 전까지 반값 등록금이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가려 유야무야 되더니 끝내 대학생들이 스스로 대학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자퇴라는 극단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다.

내년도 대학입학을 위한 수능일이 목전이다. 이미 공부 기계가 되어버린 학생들이 걱정스럽다.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 구체적인 비전도 없이 정부의 잦은 대학입시 정책을 쫓느라 온 가족이 비상이다. 대학마다 다양한 창구를 마련하여 등용문은 열어두었다고 하나 이것 역시 입학사정관제의 본래 취지에 합당하지 않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돌파구가 없는 막장인 것만 같아 답답하다.

청년실업자 50만 시대이고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도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 대학생들이 그야말로 취업전쟁에 내몰리고 있다. 과연 오늘의 대학을 두고 학문을 쌓고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학이라는 곳이 취업을 위한 직업소개소 정도로 읽혀지는 게 차라리 속이 편하겠다.

대학입시를 뚫기 위한 학부모들의 과열 경쟁과 이를 부채질하는 사교육 시장, 대학들의 전형료 장사, 정부의 빗나간 교육정책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면서 학생들은 이미 청춘의 꿈과 이상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대입이라는 개별적 맞춤식 교육과정만이 존재할 뿐이다. 보기 싫어 이민을 떠난다는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했던 사람들이 또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대학입시 교육이 총체적인 위기에 빠진 게 비단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교육백년지대계라는 말이 헌 휴지조각처럼 취급된 지 오래다. 있다면 조령모개식의 입시정책과 이에 따른 사교육 시장의 번성뿐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소수 학생들 때문에 대다수 학생들이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커져 나가는 것은 국가 교육정책에 대한 불신에 휘어지는 것은 학부모 허리니 어쩔 도리가 없다.

오는 11월 10일은 수능일이다. 난이도 조절에 최선을 다했으나 변별력이 떨어졌다는 등의 변명이 있어서는 안 된다. 수험생에게 혼란을 야기 시켜 담당자로서 유감이라는 멘트도 제발 없길 바란다. 교육방송이 사교육비 절감에 기여했다는 아전인수식의 평가도 해선 안 될 일이다.

이제 투명한 가방끈이 상징하는 의미를 한번쯤 새겨 봐야 한다. 언제까지 학생들과 학부모를 볼모로 대학이 무소불위의 만용을 부리는지 말이다. 적어도 학교만큼은 모든 것에서 투명해지고 자유로워지는 날이 와야 한다. 가방끈이 길다고 해서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다는 달콤한 환상에서 벗어나는 세상이 제발 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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