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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노동자, 교사의 설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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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노동자, 교사의 설 자리가 없다"
  • 양선례
  • 승인 2023.07.25 16: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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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례∥동강초등학교 교장

1학년 교실. 담임 선생님은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재혼하면서 데리고 온 아이로 새 아빠와 할아버지는 아이가 조금만 잘못해도 매로 다스렸다. 아이는 주변을 정리할 줄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수업이 끝나면 쓰고 난 크레파스를 제자리에 놓고, 풀이나 사인펜 뚜껑을 닫거나, 오리고 남은 색종이를 모아서 쓰레기통에 버릴 줄도 몰랐다. 아이의 주변은 책과 학용품이 늘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1학년 담임은 별걸 다 가르친다. 어른의 눈높이에서는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한 일도 다 새로 지도해야 한다. 화장실에서 노크하고 물 내리는 법, 손 씻는 법, 풀칠하거나 가위질 하는 법도 다 가르쳐야 한다. 저절로 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말하는 대로 잘 따라오는 아이가 있는 반면에 위 아이처럼 말 무서운 줄 모르는 이도 있다.

학교에서 3월 한달은 기본생활습관을 가르치는 달이다. 좁은 교실에서 스물여섯 명이나 되는 학생들과 잘 지내려면 학기 초 습관이 중요하다. 담임은 이 학교에서만 1학년 담임을 3년째 한 50대의 베테랑 교사였다. 

담임은 그런 아이를 더 두고 볼 수 없었다. 어떻게든 정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했다. 이제 교육의 시작인데 하지 못하면 학창 시절 내내 지적을 받을 게 눈에 보였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는 곳이 바로 초등학교니까. 마침 중간놀이 시간에 맨 뒤에 여학생 둘만 남아 있고 다른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데 아이가 들어왔다.

때는 이때다 싶어 지난 수업 시간에 쓴 미술 용구를 정리하라고 했다. 아이는 화를 내며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이번 기회에 정리하는 버릇을 단단히 들여야겠다고 작심한 담임은 하지 않으면 나가서 놀지 못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욕하면서 자신의 책상과 의자를 밀어서 넘어뜨렸다. 

“너만 책상 엎을 수 있냐? 선생님도 할 수 있어.” 그러면서 아이와 똑같이 책상을 넘어뜨렸다. 이번 기회에 야무지게 버릇을 고쳐놓아야겠다고 결심한 터여서 담임도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맨 뒷줄에 앉아서 놀던 여자아이 둘이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보았지만 담임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담임의 강수에 놀란 아이는 투덜거리면서 자신이 어지른 것을 정리하고서야 나가서 놀 수 있었다.

사건은 다음날 벌어졌다. 책상을 넘어뜨리고 담임이 악을 쓰며 말하는 바람에 자신의 딸이 깜짝 놀랐다며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고 학부모가 문제를 제기했다. 담임은 선후를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오직 결과로만 이야기하니까.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자, 학부모 간에도 의견이 갈렸다.

더 큰 뜻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며 옹호하는 쪽과 정서 학대로 몰아가는 쪽으로 말이다. 정작 당사자인 아이의 엄마는 자신의 아이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미안해했다. 행여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는 관리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함께 아파하고 손잡아 주기라도 했으면 오죽 좋았을까.

담임은 상심했다. 그 반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학교에서는 휴직을 권했다. 진단서를 끊으려면 병원에 가야 했다. 의사한테 저간의 사정을 말하는데 눈물부터 나더란다. 누구도 대신 아파해 주지도, 위로해 주지도 않는 상황에서 그동안의 설움이 쌓여 생전 처음 보는, 젊은 의사 앞에서 펑펑 울었단다. 

결국 그녀는 휴직하는 동안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처음에는 다른 학교로 옮겨서 1년을 정말 멋지게 마무리하여 35년의 긴 교직 생활을 끝내려고 했단다. 그리하여 아이로 받은 상처를 싹 잊어버리고 교단에서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었단다. 그런데 막상 쉬어 보니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살았는지 보이더란다.

그때가 아니었더라면 명예퇴직할 용기도 내지 못했을 터라서 지금은 오히려 그 아이들이 고맙단다. 대학 1학년 때 친구의 언니로 처음 만나서 같은 학교에서 근무한 적도 있는 지인의 이야기다. 그녀는 그렇게 교단을 떠났다. 

꽃다운 나이의 젊은 교사가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 다른 곳도 아닌 학교라서, 더 반향이 크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교단에 선 그녀가 죽음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전국적으로 교단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전남도교육청도 본청은 물론 순천만생태문화교육원에도 분향소를 마련했다. 웬만해서는 잘 움직이지 않는 교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남 일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인의 사례에서 보듯이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수업을 방해하고, 질서를 깨는 아이를 제어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그 아이를 나무라고 야단치면 ‘정서 학대’란다. 정당한 교육적 행위조차 상대방이 그렇게 느끼면 학대가 된다. 질서를 해치는 아이를 보다 못해 교실 밖으로 내보내면 수업권 침해다.

현재의 법으로는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이를 나무라니 “그러면 선생님을 아동학대로 신고할 거예요”라며 당당하게 휴대폰을 집어 드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도 주변에서 보았다. 어느새 ‘을’이 된 교사의 현재 모습이다.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작은 변화라도 있어야 한다. 교사의 손발을 꽁꽁 묶어 둔 상황에서 질 높은 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 ‘감정 노동자’ 교사의 설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 젊음이 아깝다. 유족에게 깊은 위로를 보내며, 젊은 교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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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균 2023-07-31 16:14:06
어떻든 부모에게는 행동여하에 관계 없이 위치를 보고 순종하며 교사는 그 옷자락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가치와 기준을 오늘날의 현실과 인권논리에 의해 상황화 시켜서 무너뜨린 것이 전교조 입니다. 이들의 바탕에는 무신론 유물론적 세계관이 있기에 소위 기득권세력 에 대한 도전으로 전통가치와 손대서는 안될 절대기준인 도덕과 윤리의 경계선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 결과 교권은 추락되고 교사는 교실내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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