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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중독 아버지 옆을 지키는 연꽃같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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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중독 아버지 옆을 지키는 연꽃같은 딸
  • 박주정
  • 승인 2023.04.22 2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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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정의 콩나물 교육(17)

어느 가을날, 호형호제하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 학생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이고, 아내와 이혼했는데 아버지는 중독 치료를 받고 있어서 격리 중입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가 병원을 이탈하여 집에 와서 애들 보는 앞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있답니다. 초등학생 아이가 학교로 전화를 했는데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요?”

“그 집 주소를 알려주게나.” 곧바로 그 집으로 향했다. 3층 주택이었다. 집 앞에 여성 한 분이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 가정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였다.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주저하며 집 안을 살피고 있었다. 다가가서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저는 여기 애들 돌보는 사회복지사인데요, 아이 아버지가 문을 걸어 잠그고 세 아이와 동반자살을 한다고 저렇게 난립니다.

경찰에 연락은 했는데 아직 안 오고 있네요.” “그러면 왜 안 들어가세요?”  “무서워서 못 들어가겠어요.”  문을 두드렸으나 열어주지 않았다. 안에서는 아이들 울음소리만 들렸다. 계속 문을 두드리며 문 좀 열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대답했다.

“누구시오?” “저는 교육청 학생생활지도 장학관입니다.”  “왜 왔소?” “어려운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애들 돌보고, 필요한 것 도와주려고 합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우리는 마지막 가는 길이니 상관하지 마세요.” 버럭버럭 소리만 질렀다.

공권력을 투입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경찰이 왔을 때 가족이 창문으로 뛰어내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다. 창문 아래쪽에 매트리스를 깔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그것은 119가 출동해야 한다고 했다. 소방대원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내가 자꾸 간청하니까 아버지가 문을 열어주었다. 

집 안에 들어가니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딸이 아버지를 붙잡고 있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동생은 겁에 질려 울고 있었다. 집기들은 부서져 나뒹굴고, 아버지의 눈동자는 완전히 풀려있었다.  아버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사회복지사와 경찰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함께 들어가면 돌발행동이 나올 것 같아 밖에서 기다려달라고 하였다. 두어 시간 정도 지나자 나도 많이 지쳤다. 아버지도 지쳐 보였다.

그는 내게 물었다.  “왜, 무엇 때문에 우리를 이렇게 괴롭힙니까?”  “아버님, 아이들 인생도 있는데 아버지가 함께 죽자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여튼 우리가 이 아이들을 돌볼 방법을 찾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아버지 일부터 하세요.”  그러자 아버지는 자기와 아이들을 버린 아내에 대해 원망과 분노를 쏟아냈다. 나는 그를 달래며 얘기했다.

“오늘 밤은 제가 애들을 데리고 있을 테니 내일 다시 차분하게 얘기를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는 동안 아이들을 도와줄 방법을 여러 관청이나 단체와 협의해 보겠습니다.”  아버지는 많이 지쳤고 힘들어했다. 이따금 정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때 마침 알코올중독을 치료하는 곳에서 아버지를 찾으러 왔다. 기관에서 강제로 연행해 아버지를 차에 실었다.

나는 세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큰아이가 가지 않겠다고 했다. “너는 왜 안 가려고 하니?” “아버지가 또 탈출해 여기에 오면 3층에서 뛰어내릴지 모르니 제가 기다렸다가 말려야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먹먹했다. 흙탕물에 연꽃 같은 딸이었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힘들었을 텐데 아이는 아버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초·중학생 두 아이만 내 차에 태웠다. 

예고 없이 두 아이와 집에 도착하자 가족들은 당황했다.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둘째 딸이 자기 방에서 재우겠다고 했다. 긴장이 풀리고 지쳐서 벽에 기대고 있는데 둘째가 물었다.  “아빠, 동생들이 배가 고픈 것 같은데 뭘 먹여도 될까요?”  “아, 내가 그걸 깜빡했구나. 그래도 되지. 애들한테 뭐 먹고 싶은지 물어봐.”  “동생들이 누룽지가 먹고 싶대요.” 둘째 딸이 누룽지를 끓여 먹였다. 식사하고 나서도 아이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주 들락날락했다. 나도 눈꺼풀만 무겁지 쉬이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둘째 딸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서 챙겨주었다. 앞으로 아이들 생활을 어떻게 챙길 것인지가 문제였다. 교육청, 학교, 아동복지센터 관계자와 사회복지사가 모여 대책회의를 가졌다. 그간의 사정을 들으니 아버지의 난동은 하루 이틀된 일이 아니었다. 일상적인 일인 듯 회의 참석자 일부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가구를 부수고, 자살 소동을 벌였어요. 그 사람 난리만 피우지 자살은 하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냉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는 그렇더라도 이 3남매를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얼마나 지치고 반복되었으면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이해가 갑니다. 저는 한 번인데도 정말 힘이 드네요. 그렇지만 만에 하나라도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어떻게든 도울 수 있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나는 모금 운동을 해서 매달 일정 생활비를 애들에게 보내주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초·중학생에게는 대학생 멘토링제를 실시해보자고 했다. 문제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아이들과 주변을 힘들게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 성장하고 있었다. 우선 금전적으로 도움을 받게 되었고, 대학생들이 멘토가 되어 학습뿐만 아니라 학교와 가정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밀착해서 도와주었다. 

이후 큰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에 진학해 자신의 꿈을 키워갔다. 완벽한 보호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벼랑 끝 같은 힘든 시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청소년 시기, 자칫 엇나갈 수 있는 아이들에게 사회가 안전망을 제공하고 품어준다면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고 함께 사회의 일원이 되어 함께 동반자의 길을 걷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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